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1. 사건의 배경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조(과기연전) 소속 한국해양수산개발원지부(KMI지부)는 2005년 설립 이후 기관 내 주요 보직자의 내부 비리 척결과 공공기관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요구했다. 이에 사측은 연구비 횡령 등 비위행위를 시정하기는커녕 2009년 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 노사관계 선진화’를 빌미로 단체협약을 해지했다. 더 나아가 지부장 등 노조 간부 4인을 해고·정직처분하고, 업무방해 등 형사고소로 탄압하며 노조 무력화에 나섰다. 결국 90%이상이었던 노조 조직률은 20% 이하로 추락했다. 2진 아웃제 도입, 각종 수당폐지, 임금체불로 인해 연구현장의 조직문화는 급속도로 와해되고 근로조건은 형편없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KMI지부 간부들에게 사측은 47가지의 징계사유를 들어 해고처분을 했으나 법원은 징계사유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대상판결 외 부당노동행위 사건에서도 법원은 불이익취급으로 인정했다. 이렇듯 당시 공공기관 선진화는 KMI지부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노조에 대한 탄압의 수단이자 기제로 작동됐다. 대상판례는 사측이 공공기관 선진화를 빌미로 노조를 얼마나 탄압했는지 그 상흔의 일부를 증명해 주고 있다.


2. 대상판례 검토

가. 사건의 경위 및 징계처분의 부당성

KMI지부 간부들의 개발원 비리행위 척결요구에 대해 사측은 47가지의 징계사유를 들어 해고 등 징계처분을 강행했다. 그러나 노동위원회는 부당징계 판정을 했고, 대상판례인 고등법원 판결에서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사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1심 행정법원은 사측이 제시한 사유는 징계·해고사유가 될 수 없다는 구체적인 이유를 적시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법원은 사측이 징계사유로 허위사실 유포 등 기관 품위손상·업무방해를 들고 있으나 배포 문건내용 중 사실 적시에 관한 부분은 진실인 것이 다수라는 점, 진위가 불명확한 경우에도 노조와 대립관계 등 작성 경위나 목적에 비춰 사측에 대한 품위손상·업무방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한편 다른 징계사유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판단했다.

징계양정 판단에 있어서 1심 대상판례는 그동안의 대법원 판례를 원용해 판시했다. 해고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행해져야 그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이고, 사회통념상 당해 근로자와의 근로관계를 계속 지속할 수 없을 정도인지의 여부는 당해 사용자의 사업의 목적과 성격, 사업장의 여건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03.7.8.선고 2001두8018판결)는 것이다. 근로자에게 징계사유가 있어서 징계처분을 하는 경우 어떠한 처분을 할 것인가는 원칙적으로 징계권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것이므로, 그 징계처분이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는 것(대법원 2000.10.13.선고98두8858판결, 대법원2002.9.24.선고2002두4860판결)이라고도 했다.

1심은 징계해고의 양정을 판단하는 데에도 사실관계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노동자와 사용자는 분리·대립돼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는 관계이므로 노사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우선돼야 하고 따라서 징계와 같이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차선책으로 사용해야 하며, 특히 해고의 경우 노사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징계처분이므로 노사 간의 신뢰가 완전히 파괴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서, 그와 같은 파탄의 책임을 노동자 쪽에 있는 것으로 하는 것이 정당한 경우에 한해서만 행해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징계해고의 양정이 과다해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나. 소결

이 사건에서 사용자가 노조 임원이며 간부인 해당 근로자에게 단행한 징계처분은 앞서 언급한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구실이면서 더불어 사측의 내부 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징계 사유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징계처분으로서 효력은 상실된다. 더욱이 대상판례는 근로자에 대한 징계처분이 원칙적으로 징계권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전제하면서 분리·대립의 노사관계가 아닌 배려·존중의 노사관계에서 징계처분을 차선책으로 사용해야 하고, 해고와 같은 징계처분의 경우 파탄의 책임이 노동자쪽에 있어 ‘정당한 경우’에 한해서만 행해져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징계의 권한이 징계권자에게 있다는 것을 과연 ‘원칙’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노사 동수의 징계위원회가 구성돼 징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인사권이나 징계권에 의해 근로자는 항상 피징계자 신분이 될 수밖에 없는 노사의 역관계 속에서 말이다. 사용자 일방에 의해 징계처분이 내려지는데 징계재량권의 남용여부를 ‘배려와 존중의 노사관계’ 속에서 찾는 것이 해답일 수 있을까. 노사관계에서 배려와 존중이 우선돼 징계처분이 ‘차선책’으로 사용될 수 있으려면 우선 징계 등 모든 노동조건을 노사 간 동등한 지위에서 동등한 내용으로 결정하는 규정이 확립돼야 한다. 그래야 노사관계가 본질적인 대립물의 공존으로 이행될 수 있다.

한편 노동자에게 노사관계 파탄의 책임이 있는 해고를 정당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징계권 행사의 주체가 사용자이고 노동자가 그 대상이라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노사관계 파탄의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배려의 주체는 사용자다. 그 사용자의 징계 재량권한만 존중되는 노사관계에서 해고 등 징계처분의 희생자는 항상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3. 나가며

당시 공공기관 선진화는 임금삭감·인원감축 등 노사관계에 영향을 주는 많은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어 공공기관의 노사관계를 파탄지경에 내몰았다. 당시 참혹하게 파탄지경에 몰렸던 노조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과기연전 KMI지부처럼 법정 싸움에서 전승한 노조는 많지 않다. 법정 싸움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조합원은 탈퇴했고, 노조는 무기력감과 패배의식을 조직복원의 숙제로 삼아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공공기관은 제조업 등 사기업과 달리 정부 지침에 따라 노사관계는 물론 노동조건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교섭 상대방은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지만 개발원 원장은 권한이 없다. 권한이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기획재정부나 감사원의 지적사항이 있다면 이를 따라야 기관평가를 잘 받을 수 있는 처지이기에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것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교섭상대방은 공공기관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실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국가여야 한다. 제조업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실제 사용자가 원청인 대기업이라는 원청사용자성 투쟁을 하는 것처럼 공공기관 노조는 그 교섭상대방과 실질적인 사용자를 국가로 규정해야 한다. 노동자가 국가를 상대로 투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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