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사진통신사(EPA)가 타전한 한 장의 사진이 눈길을 모았다.‘99%’라는 모양만 남긴 채 머리털을 깎아버린 한 남자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그는‘반월가 시위’에 참여한 이발사였다. 은행들이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위기에 처한 주택소유자들에게 대출이자를 대폭 깎아줘야 한다는 의미로‘99%’형의 머리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머리도 같은 형태로 다듬어줬다.

‘월가를 점령하라’며 미국에서 시작된 이 시위는 27일 현재 41일째다. 지난 15일에는 미국·유럽·아시아 82개국 1천500개 도시에서 같은 시위가 동시에 진행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같은날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서울 여의도 금융가에서 시위가 진행됐다. '여의도를 점령하라'는 금융수탈 1%에 저항하는 99%의 집회는 지난 21일 두 번째로 진행됐다.

반월가 시위는 실업을 겪는 미국 청년들이 월스트리트에 텐트를 치고 항의시위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의 목소리는 분명하다. 1% 월가 금융자본의 이익 사유화와 손실 사회화로 인해 99%는 실업과 빈곤 그리고 차별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월가 금융자본은 이런 금융세계화 시스템을 전 세계 국가로 이식했다. 금융자본의 탐욕스런 수탈은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다. 반월가 시위는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세계화에 대한 반성이자 분노의 표출이었다.

우리나라 99%도 미국의 그들과 다르지 않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과 장기 실업이라는 악순환에 처한 청년, 저축은행 파산으로 알토란같은 적금을 날려 버린 서민, 파생금융상품에 가입했다가 원금마저 날려버린 중소기업인은 대표적인 피해자다. 모든 거래에 수수료를 물리고, 해마다 수조원의 이익을 남기는 은행 탓에 호주머니를 털리는 서민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국가가 해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1%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여긴다. 99%가 금융자본의 안마당인 여의도를 점령하겠다고 나선 이유다.

전 세계로 확산된 반월가 시위는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되는 세계시민사회포럼으로 결집한다. 같은달 3~4일 프랑스 니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대응해 개최되는 세계시민사회포럼은 세계 노동·시민단체들이 참여한다. 세계시민사회포럼에선 탐욕스런 금융자본을 통제하고, 대안 금융시스템에 대해 논의한다. 금융거래세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거래세는 특정 형태의 금융·외환거래 등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금융자본의 단기·투기적 거래로 금융위기가 일상화되는 것을 막는 제도다. 이 제도는 투기자본에 노출된 다수의 신흥국가에서 급작스런 외자유출로 인한 금융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외국자본의 자본이탈로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우리나라도 금융거래세의 도입은 절실하다.

현재 그리스 재정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유럽연합의 경우 G20 회의에서 금융거래 도입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다. 물론 금융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이 반대하고 있다. 달러화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미국·영국 중심의 금융세계화가 밑동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 탓이다.

그럼에도 금융거래세 도입은 이제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전 세계로 확산된 반월가 시위는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요구하고 있고, 그 대안으로 금융거래서 도입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월가 시위를 주도한 캐나다의 애드버스터스는 모든 금융·통화 거래에 1%의 세금을 물리는 이른바 ‘로빈후드세’의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애드버스터스는 G20 정상회의를 겨냥해 이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전 세계 시위를 제안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계도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간부 11명을 중심으로 G20 한국원정투쟁단을 구성해 지난 26일 프랑스로 떠났다.

이처럼 전 세계로 확산된 반월가 시위는 진화하고 있다. 미국과 각국 정부가 강경진압에 나섰다고 해도 반월가 시위의 함성은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세계시민사회포럼은 반월가 시위의 목표를 세우고, 지속시키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1%에게 수탈당하는 99%의 한국 국민을 대표해 프랑스를 간다는 심정으로 모든 힘을 다해 활동을 펼칠 것"이라는 G20 한국 원정투쟁단의 건투를 기원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