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분노가 공원을 점거했다. 1%를 위한 사회를 바꾸자. 함성이 광장을 울렸다. 우리가 99%다. 지난 15일에는 뉴욕·로마·마드리드, 그리고 서울까지 82개국 1천500여 도시에서 외쳤다. 월가를 점거하자는 뉴욕 주코티공원의 외침이 전 세계에 메아리쳤다. 그리고 전 세계 도시의 광장은 새로운 외침이 울려 퍼졌다. “빈부격차를 시정하라, 정치부패를 척결하라, 민영화를 반대한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라, 비정규직을 철폐하라.” 하나의 대오도 하나의 구호도 아니었다. 그러나 월가로 상징되는 1%에 빼앗긴 99% 인민이 하나로 시위운동을 했다. 그리고 주코티공원의 외침은 이번 주말에도 계속됐다. 1% 위한 세상을 바꾸자고.

2. 그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1% 부자를 위한 세상이었나. 주코티공원의 분노는 1% 위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 하나로 전 세계 인민의 분노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진정 1%를 위한 세상이라고 전 세계에서 이번 시위운동으로 확인된 것인가. 지금까지 대통령·총리·국회의원, 우리 세상의 지도자들은 날마다 국민을 위한다고 말해 왔다. 그런데 이번 시위운동은 그들의 말이 거짓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100%의 국민이 아니라 그중 1%의 국민을 위해 권력을 행사해 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뭔가.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에 혜택을 줘야 한다, 기업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권력자의 말은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 것인가. 국민경제 발전은 거짓이고 기업에 혜택을 줘야 한다, 기업의 규제를 풀어 줘야 한다는 것, 권력이 내세우는 목적이 아니라 결론으로 알아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럼 경제위기 극복 어쩌고 하는 것도 그런 거였다는 거다. 사실은 기업에 혜택을 줘서, 기업 규제를 풀어서 경제발전·위기극복 하면 그것은 기업의 소유자, 즉 자본가에게 귀속되는 것인데 이걸 다 말하지 않고서 우리의 지도자들은 단지 경제발전·경제위기 극복까지만 말했던 것이라고 국민들은 알아들어야 했다는 것인데. 99%의 국민이 순진했거나 무지했다는 것이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등 고용시장 유연화, 성과주의의 임금제도와 인사관리제도, 노사관계의 합리화 선진화도 모두 국민경제발전 운운했었는데 이것도 모두 1%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요란하게 떠들어 대는 복지 어쩌고 하는 것도 사실은 1%를 위한 것이란 건가. 정말 이상하다. 주코티공원의 구호도, 이에 반응하는 전 세계 광장의 구호도 이상하다. 1%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 세상은 이상하다. 우리 세상은 1%를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99%는 분노하지 않았다. 이제야 주코티공원에서 점거하고, 세계의 도시 광장에서 시위하고, 1%의 탐욕에 99% 인민은 이렇게 분노하고 있다. 1% 위한 세상 바꾸자고.

3. 그랬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은 1%를 위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1%를 위해, 1%가 아니라도 5%, 10%, 20%에 들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살아가고 있다. 공부하고 일하고 사업하고. 입시·취업·투자…. 우리 세상에서 수많은 경쟁은 바로 이것 때문에 존재한다. 몇 %에 들기 위해서. 이렇게 우리 세상은 몇 %는 성취의 자리고, 꿈이고 그래서 모두 그것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래서 1%는 빛나는 자리가 된다. 모두가 희망하는 자리이므로 모두가 바라보는 빛나는 자리가 된다. 그리고 1%는 99% 위에서 군림한다. 그러니 당연히 1%를 위한 세상만 있고 99%를 위한 세상은 없다. 1%가 이 세상의 부를 독점하고, 권력과 언론을 지배해 왔다. 이미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은 1%를 위한 세상이라는 걸. 그리고 그 1%의 대부분은 자본의 차지다. 새삼스럽게 철학을 학습해서, 정치경제학을 학습해서 자본의 운동법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서야 알게 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이미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욕망과 본능은 1%를 향해서 달려왔던 것이다. 아름답다, 고귀하다, 위대하다, 우수하다, 뛰어나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한다까지도. 이 세상의 온갖 우월하고 지배적인 말은 1%에 붙여져 있다. 만약 어떤 말이 1%에 붙여진 것이 아니라면 그 말은 우월하고 지배적인 가치의 말이 아니다. 이렇게 알고 있었음에도 이제야 외치고 있다. 1%를 위한 세상을 바꾸자고.

4. 어째야 할까. 이 나라 노동자는. 이 세상에서 노동자는 1%가 아니다. 이건 노동자도 잘 알고 있다. 이 나라에서 1%는 부를 독점하고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자다.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직접 사용자에 맞서야 한다. 노동에 의한 사업장 생산물(용역 포함)은 자본에 귀속되는 것이니 노동의 권리는 자본에 자신의 죽은 노동의 결과를 내놓으라고 해서 확보할 수 있다. 예링(Rudolf von Jhering·독일 법학자)의 국민에게는 권리를 위한 투쟁이 국가법의 정의를 세우는 노력이겠지만 노동자에게 권리를 위한 투쟁은 사업장 자본에 맞서 일상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생존이다. 사업장에서 자신의 노동의 결과를 차지해 가는 자신의 사용자, 개별 자본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피할 수가 없다. 지난 15일 서울의 광장에서는 1천여명이 시위했다. 99% 행동준비위원회가 주최한 지난 주말에는 500여명이 시위했다. 수만 명, 수십만 명이 시위했던 로마·마드리드·베를린·리스본보다 훨씬 적었다. 무엇보다도 노조 등 조직적 노동자대오의 참여는 없었다. 1%를 위한 세상을 바꾸자는 건 1%가 독점하고 지배하는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다. 이건 이 나라 노동운동이 꿈꾸는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까지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1% 위한 세상은 이 나라 노동자가 바꿔야 할 세상인 건 분명하다. 지금 주코티공원에서, 전 세계의 나라들의 도시에서 1% 위한 세상을 바꾸자고 하고 있을 뿐 바꾼 세상이 뭐라는 것인지는 외치고 있지 않다. 지금 이 세상에서, 1%를 위한 세상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바꾸라고 외쳐 대고 있다. 월가 등 금융자본에 대한 저항에서 운동은 시작됐다. 하지만 이것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지금 구호만큼이나 다양하게 나라마다 전개될 것이다. 결국 운동이 전개되는 나라에서 인민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구호로 외치게 될 것이다. 지배자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요구를 내걸고 구호를 외칠 것이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이 나라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광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그 구호를 사람들이 따라 외치게 하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외치면 된다. 1% 위한 세상 바꾸자고.

5. 공원과 광장의 분노는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우리 세상의 민주주의 제도에 관해 묻고 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떠들어 왔던 지금 민주주의는 1% 위한 지금 세상을 존재하게 했다. 대통령·총리·국회의원 등 국민의 대표 선출을 위한 선거행위는 1% 위한 세상을 위한 행위였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민주주의는 1% 지배자에게는 유익하고 정당했지만 99% 인민에게는 유해하고 부당했다는 것이다. 우리 세상의 민주주의는 99%를 위해서는 기능하지 못했다. 그러니 1%에게는 낡은 게 아니지만 99%에게는 낡았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와 국가기관은 99% 국민을 대변하지 못했다. 그래서 주코티공원과 전세계 광장의 함성은 지금 낡은 민주주의를 흔들고 있다. 우리가 99%다. 이렇게 1%를 위한 민주주의를 비판해 대고 있다. 지금 99%는 공원과 광장을 떠돌고 있다. 의사당과 정부청사에는 99% 국민의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1%가 아니라서 시위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 세상의 민주주의가 그들을 배척했기 때문에 그들은 공원과 광장에서 시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99%를 위한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1%를 위한 세상을 위해 기능하는 민주주의제도라면 그건 우리 세상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1% 지배자를 위한 세상이라면 이 세상의 민주주의가 지배자에 농락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권력과 언론, 교육과 문화 등 이 세상의 어떠한 것이든 99%가 아닌 1%를 위한 것으로 민주주의를 고장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주코티공원과 전 세계 광장의 외침은 단순히 1%만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 세상의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99%를 대변하고 있지 않은 민주주의는 고장 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회의사당에서 의원의 외침은 헌법에 새겨진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보다 많은 의원을 확보하고자 하는 건 뭐라 말해도 우리 세상의 민주주의에 대한 찬양이다. 그러나 공원과 광장에서 1% 위한 세상을 바꾸자는 인민의 외침은 헌법에 새겨지지 않은 민주주의를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 세상의 민주주의가 99%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고장 났다는 비난이다. 그 외침의 내용과 크기에 의해 민주주의의 방향과 높이가 정해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 주코티공원에서, 전 세계의 광장에서 인민의 외침은 자신의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1%를 위한 세상을 바꾸자고.

그러니 서울의 광장에서 이 나라 노동자들이 1%를 위한 세상을 바꾸자고 외치게 된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아직은 알 수가 없다. 찬양이냐, 비난이냐. 과연 이 나라 노동자는 광장에서 외치게 될 것인가. 1%를 위한 세상을 바꾸자고. 1%를 위한 민주주의를 바꾸자고.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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