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보육교사로 일하던 김아무개(29)씨는 최근 결혼한 지 3년 만에 어렵게 생긴 아기가 숨을 쉬지 않아 급히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휴식을 권유했고, 며칠 쉬다 보니 아기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비슷한 일이 반복될까 두려워 결국 일을 그만뒀다. 그는 "보육교사들 대부분은 가임기 여성들인데 과로 등으로 인해 생리불순에 시달리고, 어렵게 생긴 아기조차 유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무엇보다도 아기가 생기지 않아 고통을 겪다가 일을 그만두면 거짓말처럼 아기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근골격계 질환도 일상이 됐다. 보육교사들은 아이들을 업고 안느라 손목과 허리에 통증을 달고 산다. 하루 중 12시간 동안 아이들과 얘기해야 하기 때문에 성대질환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생긴 위장장애는 덤이다. 한 시간 동안 아이들 밥 먹이고, 대소변을 치우다 보면 교사에게 허용되는 식사시간은 고작 10분 남짓이다. 10분 동안 일부는 밥을 '마시고', 또 다른 일부는 아예 밥을 굶는다.

이처럼 다양한 직업병을 앓고 있지만 보육교사에게 산업재해 신청제도는 그림의 떡이다. 김씨는 "사고가 나면 어린이집 안전공제회에 신고하도록 돼 있지만 공식기록에 남기 때문에 신고를 꺼린다"며 "사고가 많이 나는 사업장으로 소문이 날 것을 두려워해 원장과 교사가 서로 합의해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 관행화돼 있다"고 말했다.

간병인 이아무개(61)씨는 불안한 마음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에이즈병동에서 환자를 돌보다 주사 바늘에 찔렸기 때문이다. 지난 7월에도 환자로부터 피부질환인 옴에 감염돼 9월에 치료를 마쳤다고 했다. 이씨는 현재 에이즈 감염 여부에 대한 혈액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씨에 따르면 병원은 감염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감염이 발생한 후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는 “간호사가 주사를 함부로 방치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주사기가 있었고, 어느 순간 바늘에 찔렸다”며 “응급실에 갔더니 정직원이 아니라고 치료를 거부했고, 노조가 항의하자 뒤늦게 응급조치를 해 줬다”고 말했다. 이씨는 “너무 무서워서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채 노조와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병원이 주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고 병원 환자를 돌보다 생긴 일인 만큼 병원이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울먹였다.

그러나 이씨의 바람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간병인은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돌봄노동자의 건강권이 착취당하고 있다. 돌봄노동의 사회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것이 또다시 노동자 개인의 희생으로 전가되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서 일을 시작한 보육교사는 정작 과로 등으로 인해 불임의 고통을 겪고 있다. 타인을 건강하게 만드는 간병인은 병원균에 무방비 노출돼 정작 자신의 건강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육·간병·노인요양·장애인 보조 등 돌봄서비스가 확대될수록 돌봄노동자의 그늘은 짙어지고 있다.

이 같은 실태를 알리기 위해 돌봄노동자들이 공동행동에 나선다. 공공운수노조·돌봄노동자법적보호를 위한 연대·노동건강연대·전국요양보호사협회는 오는 29일 서울역에서 돌봄노동자대회를 개최한다. 여러 직종의 돌봄노동자들이 모여 ‘건강권 쟁취’를 의제로 공동행동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일을 하면 할수록 노동자의 건강을 잃을 수밖에 없는 열악한 노동현실을 알리기 위해 대회를 기획했다”며 “건강권 보장은 고용불안과 사고위험에 놓여 있는 돌봄노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라고 밝혔다.

돌봄노동자들은 공통적으로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 아이·환자·장애인·노인 등을 돌보며 안거나 업는 등의 작업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람의 정서적·지적노동이 직접 전달되면서 이뤄지는 온전한 관계 중심의 노동을 하는 탓이다. 아프고 힘든 기색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항상 웃어야 하는 감정노동도 해야 한다.

이들에게는 일의 특성상 휴식시간과 휴식공간이 별도로 주어지지 않는다. 보육교사의 경우 화장실에 갈 때조차 아기를 안고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목이 아파 물을 많이 마셔야 하지만 화장실에 자주 갈 수 없어 그러지도 못한다. 방광염을 호소하는 교사들이 많은 이유다. 환자·장애인 등을 돌보는 이들 또한 쉽게 자리를 뜰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일을 하면 할수록 병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번 대회에서 △돌봄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돌봄노동자 8시간 노동 및 근로기준법 준수 △돌봄노동자 실제 휴게시간 보장 및 휴게공간 마련 △돌봄노동자 적정 인력기준 마련 등을 정부에 공동요구안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돌봄노동자가 하는 일에 비해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회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잘못 설계돼 있다는 방증이다.<표 참조>

 

 


박지영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은 “사회 서비스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정작 그 일을 하는 돌봄 노동자의 처우에 대해선 사회가 돌보지 않고 있다”며 “돌봄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의 원인이 정부의 사회서비스 시장화임을 알리고,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공론화 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이를 위한 첫 출발로 돌봄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박 국장은 “정부는 물론 그간 노동계에서조차도 다양한 직군의 돌봄노동자 전체를 아우르는 건강권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었다”며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한 공동행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돌봄노동자를 노동권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해 놓고 사회서비스의 질을 논하는 것은 모순이다. 돌봄노동자의 노동실태는 사람을 키우고 돌보는 일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 주는 잣대다. 사회구성원의 재생산이 중요하다면 그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돌봄노동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돌봄노동의 가치에 걸맞은 사회적 대우를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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