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교육센터 연구원
 

2012년 총선·대선의 전초전인 서울시장 선거는 10·26 재보선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지역이다. 대통령 측근의 부정부패가 나오고 내곡동 사저 파문에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한나라당은 박원순 후보에 대해 선거 초반부터 각종 의혹을 제기했다. 네거티브 공세라며 대응을 않던 박원순 후보측도 여론조사에서 박빙의 결과가 나오자 나경원 후보에 각종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정책대결은 자취를 감추고 후보검증 폭로전이 펼쳐지고 있는 양상이다.

엉뚱하게도 서울시장 선거를 지켜보며 “산업재해도 이렇게 폭로전의 양상을 띠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부정의 느낌을 주는 ‘폭로’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나쁜 일·음모·비밀 등이 드러남. 또는 드러냄’이다. 폭로가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면 산재은폐 폭로전은 상당한 각축전을 벌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드러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해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망률 1위를 달리고, 산업재해율은 0.7%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통계 뒤에는 은폐된 산업재해가 숨겨져 있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유성기업지회는 지난 18일 유성기업 사장을 산재은폐로 고발했다. 지회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100여건, 올해 1월과 2월에만 13건의 산재가 은폐됐다고 주장했다. 노동자가 일하면서 다쳤지만 회사측의 요구로 인해 공상으로 치료를 했다는 것이다. 공상치료는 산재보험 대신 회사가 치료비와 휴업급여 등을 보상하는 것이다. 지회는 “단순치료까지 포함하면 은폐된 산재는 300여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자료가 확보되지 않은 2008년 이전에도 많은 사례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0조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또는 4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는 1개월 내 산업재해조사표를 작성해 관할 지방노동청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회사가 산업재해를 공상처리를 하는 이유는 산업안전 점검대상과 산재보험률 인상을 피하기 위해서다. 회사가 공상처리를 요구하면 중대재해나 큰 사고가 아닌 이상 노동자는 고용불안으로 인해 거부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공식 통계보다 12배 이상 많은 산재가 은폐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06년 외부에 의뢰해 연구한 ‘국가안전관리 전략수립을 위한 직업안전연구’ 보고서에는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산재 공식 통계보다 12배 이상 많은 산재가 은폐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한해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은 1천238만8천건 중 100만1천400건이 산재보험 적용대상이었다. 산재보험 적용대상 추정치는 그해 산업재해 건수의 약 12배였다.

현실에서는 더 많은 산재은폐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산재를 산재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 노동자의 경우 공상으로 처리하는 산업재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산재는 산재보험으로 처리하고 이를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법이 노동현장에서는 작동되지 않고 있다.

유성기업지회 사례를 접한 한 안전보건활동가는 “다른 사업장 역시 산재은폐가 굉장히 많은데, 이걸 어떻게 찾고 드러낼지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은폐된 산재를 찾는 몇몇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먼저 노동자 혹은 노조가 나서 산재은폐를 폭로하면 어떨까. 은폐된 산재를 폭로하면 노동부는 바로 점검에 들어가 산재은폐 규모를 밝히고, 재발이 안 되도록 적절한 행정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산재은폐를 제기한 노동자와 노조에 피해가 가지 않아야 한다. 사업주가 책임을 지도록 하되 회사가 해당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산재은폐 폭로가 없어도 산재규모가 정확하게 잡혀 산재예방정책으로 활용되는 것을 더 선호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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