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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산재보험’

정해명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노동과 삶)

# 에피소드 1

지난달 선배 한 분이 일용직으로 인테리어 현장에 나갔다가 사다리를 올라타던 중 사다리가 아래로 쓰러지는 바람에 갈비뼈 골절상을 입었다. 현장에서 119를 불러 병원으로 옮겼는데, 사업주는 일당에 병원비를 합쳐 20만원을 주며 영수증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처음에 엑스레이(X-ray)를 찍고, 다시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 보니 골절이 발견됐다. 병원에서 입원을 해야 한다는 소견이 나오자, 선배는 내게 전화를 해서 산재 신청절차를 물었다.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이니 업무상재해가 확실했다. 현장에서 사업주는 안전모나 안전화를 지급하지 않았고, 사다리 고리를 잠그지 않고 밑에서 잡아 주는 조수도 없이 혼자 사다리에 올라가다 사다리가 주저앉으며 사고를 당했으니 사업주의 과실도 있었다. 선배가 사업주에게 전화를 걸어 산재신청 얘기를 꺼내니, 그거 조금 다친 거 가지고 산재신청을 하느냐며 지청구를 주고는 몸도 안 좋은 사람이 현장에 와서 다쳐 놓고 나랏돈을 타 먹으려 한다며 고소를 하겠다고 난리를 피웠단다.

순간 ‘죄인’이 된 선배는 내게 전화를 했고, 나는 이야기를 듣고 안 되겠다 싶어 사업주에게 전화를 걸어 차근차근 사정을 얘기하고 사고발생 사실과 사업주의 안전상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분을 확인하며 산재신청을 위해 사업주 확인이 필요하니 협조를 다시 부탁했다. 사업주는 조금 누그러진 상태였지만 산재신청에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다. 다음날 근로복지공단에 확인해 보니 사업주는 산재보험에 가입했지만 보험료를 장기간 납부하지 않아 보험급여를 자신이 일부 부담할 것으로 알고 산재신청에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낸 것이었다. 다행히 사업주와의 통화내용을 저장해 뒀기 때문에 사업주가 사고사실을 부인할 수 없도록 하고, 산재보험 지정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 보험관계 확인 문제로 처리기간이 두 달 가까이 걸린다는 답변을 받았다.


# 에피소드 2

지역에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참여자들 중에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픈 분들에게 산재신청을 해 줬더니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노동부에서 근로감독을 나왔다고 한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데 기관의 인력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조언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그 선배는 고향에서 실업자단체 활동을 하며 만났는데,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방문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역사회복지의 모세혈관과도 같은 일이다. 참여자들이 대부분 중장년층이고, 일하다가 다치는 경우도 있어 사안마다 산재신청을 하다 보니 산업재해 다발사업장이 됐고 노동부에서 근로감독을 나온 것이다.

산재신청의 대가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산재승인에 따라 지급되는 급여비용이 증가하자 산재보험료가 상당히 올라갔다. 재정구조가 튼튼하지 못한 비영리단체다 보니 산재보험료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기로 흘러나오는 선배의 목소리엔 산재신청에 대한 약간의 후회가 묻어나 있었다.


# 에피소드 3

조선소에서 청소일을 하던 친구의 장모가 업무 중 바닥에 널브러진 철제빔에 걸려 넘어져서 무릎과 정강이뼈에 골절이 발생했다고 한다. 간단한 수술을 받고 한 달 넘게 입원을 했고, 지금은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병원비는 회사에서 내줬고 첫 달 월급은 70%가 나왔다고 한다. 약해진 몸에 장해가 남을까 싶어 산재신청을 할까 하고 친구 내외는 이것저것 산재처리에 대하여 물어봤다. 장해문제로 회사와 불필요하게 마찰할 필요 없이 산재신청하는 것이 제대로 치료받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친구는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두번째 달 월급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나 하고 고민하는 눈치였다. 장모님이 치료를 마치고 회사에 계속 다니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해 산업재해율은 0.69%였다. 0.7% 대에서 오랫동안 정체상태에 있던 산업재해율이 0.6%대로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노무사를 하면서 산업재해에 관심을 갖게 되니 지표와 현실의 괴리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날 ‘국민소득 2만불 시대’라는 표어가 지금의 ‘4대강 자전거길’처럼 공중파와 지하철 광고에 도배가 된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국민소득 2만불을 체감한 국민이 한 줌에 불과했듯이 0.6%대로 떨어진 산업재해율은 통계로만 존재한다. 언제쯤 일하는 사람들에게 ‘산재보험 하나로’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정해명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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