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환경연구소 발암물질진단
사업팀장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지난 5일 영면했다. 그를 추모하는 분위기는 여전히 인터넷을 애잔하게 울리고 업적에 대한 정리와 평가가 차분하게 전해지고 있다.

지난 84년 내놓은 매킨토시는 어린아이까지 PC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컴퓨터를 작동시키기 위해 사용되던 복잡한 명령어를 대신해 화면에 있는 아이콘을 마우스로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반화된 기능이지만 당시엔 혁신이었다. 컴퓨터는 소수의 정부기관이나 대학연구소의 전문가 집단만이 접근 가능한 대형 설비였으나, 잡스가 애플Ⅱ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누구나 쓸 수 있는 개인기기로 그 의미가 전환됐다. 최근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이나 아이팟에는 사용설명서가 없다. 누구나 쉽게 기기를 조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아주 어린아이조차 가르쳐 주지 않아도 금세 조작법을 익혀 기기를 사용한다.

그의 업적과 동시에 그가 창조해 낸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고통이 오버랩되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생산하는 중국의 Wintek 공장에서는 2009년 137명의 노동자들이 노말헥산에 중독됐다. Yun Heng Metal 공장에서는 애플로고 광택작업을 하던 노동자 중 최소 8명 이상이 노말헥산에 중독되는 사건도 있었다.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또 다른 업체인 Foxconn에서는 지난 16개월 동안 14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었다. 올해 청도에 있는 한 아이패드 생산공장에서는 화재사고로 3명이 사망하고 1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각 공장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노무관리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애플의 대응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개선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고통이 반복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조건에서 고통 받고 있음에도 애플의 대응이 미온적인 것은 제품생산의 책임을 하청업체에 위임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에서 해당 공장의 작업환경 개선과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나 제대로 수용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새로 고용되는 노동자들에게 ‘자살 금지’에 서명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제조공장 책임자들의 오만함이 잡스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무찌르고도 남을 기세다.

여기서 원청이나 하청 사이의 법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도급관계에서 실제 작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하청업체의 관리 책임은 발주처의 역량에 달려 있다.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작업과 관련한 안전과 보건 문제에 발주처가 어떤 인식을 갖고 얼마나 관여하느냐에 따라 하청업체의 관리수준이 좌우된다. 애플과 같은 초인류기업이 이런 간단한 사정을 모를 리 없다. 제품에 쏟아부은 혁신의 가치 중 아주 일부만이라도 제조현장에 나눴다면 건강을 잃거나 사망한 노동자들을 구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선진국 법에서는 ‘사업주가 유해물질을 확인하고 노동자들과 노동안전대표들이 유해물질의 특징·표시·기호 등을 통해 그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유해물질 확인과 정보 전달은 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업활동으로 영향을 받는 노동자에게까지 미쳐야 한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작동할 수 있는 애플의 사용자 중심의 편의성이 제조환경에도 적용될 수 있다면, 누구나 쉽게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의 위험성을 알고, 어떻게 해야 유해물질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시스템으로 구성될 수 있다면 그동안 방치됐던 안타까운 희생을 줄여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스티브 잡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동시에 그가 제품에 깃들인 혁신의 정신이 제조환경에도 하루빨리 반영되기를 기원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