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기자

“복수노조 대응,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복수노조가 시행되기 한 달 전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 황색노조·어용노조·회사노조의 출현이라는 외부의 공격이 예상되고, 민주노조 진영 내부에서는 정치노선 차이에 따른 분화와 분열이 예상된다”며 “우리의 진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을 강화하고 어용노조와의 차별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빠른 시일 내에 삼성에 민주노조를 건설해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처럼 억울하게 죽어 가는 노동자가 없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일로 복수노조가 허용된 지 100일째를 맞았다. 지난 석 달간 설립한 노조는 498개로, 하루 5개꼴로 신규 노조가 등장하고 있다. 2009년 말 기준으로 노조 수가 4천702개인 점을 감안하면 복수노조 허용 이후 100일 만에 1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한 셈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노조 수가 증가했을 뿐이지 노조의 조직률이 증가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고용노동부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기존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생긴 복수노조가 전체의 72.7%에 달한다. 무노조 사업장에서 노조가 만들어진 경우는 89곳(17.9%)에 불과하다. 또 새로 설립한 노조 10곳 중 8곳은 양대 노총 소속이 아닌 독립노조로의 길을 택했다.

민주노총은 복수노조 100일을 맞아 낸 논평에서 ‘어용노조 육성의 100일’이라고 평가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복수노조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강성노조가 있는 사업장일수록 사업주의 지배·개입의 정황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민주노총이 느끼는 전부라면 사실 실망스럽다.

무노조 사업장에서 신규 노조가 설립된 89곳을 보면 69.7%(62개)가 상급단체가 없는 독립노조였다. 한국노총을 택한 노조는 24.7%(22개)였고, 민주노총을 선택한 노조는 5.6%(5개)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새 노조 설립과정에서 양대 노총의 개입력이 적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산별노조 가입 방침을 유지하고 있는 민주노총에서 기업별노조의 가입 수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삼성을 보라. 노조 깃발을 꽂겠다는 민주노총보다 더 빨리 회사노조를 설립해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후 민주노총과 함께 논의해왔던 삼성 에버랜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지만 아직은 활동이 미미하다. 누구나 노조를 만들 수 있는 복수노조의 시대. 어용노조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열쇠는 노동부가 아니라 노동계가 쥐고 있다. 복수노조 100일, 더 이상 남 탓만 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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