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노무법인 현장)

이야기 하나

2007년. 버스 12대를 운영하는 마을버스 회사가 있었다. 회사를 새로 인수한 40대 대표이사는 50~60대 노동자들에게 정년단축과 시간외수당의 일방적 삭감에 동의할 것을 강요했고, 버스 노동자들은 투쟁을 결의했다. 그런데 노조 총회 개최를 위한 공고 이틀 후 위원장이 해고됐다. 대부분의 해고사유는 버스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채증됐다. 법원은 CCTV의 원래의 설치목적에서 벗어나 운전자의 근무태도를 감시하는 데 악용했고, 그 내용을 판독해 징계사유로 삼은 것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노조 위원장은 끝내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조합원들 다수는 노조를 떠났다. 남아 있던 조합원들은 여전히 CCTV를 통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고 있다.


이야기 둘

2008년. 조합원이 관리자 3명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다. 피해 조합원이 고소하자, 관리자들 역시 자신들도 폭행을 당했다며 맞고소했다. 검찰은 60대 중반의 노동자 1인과 40~50대 관리자 3인의 그날 일을 중립적(?)이게도 모두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처리했다. 사용자는 폭행에 의한 치료기간을 무단결근이라 주장하며 조합원을 징계했다. 심지어 치료 후 복귀한 피해 조합원에게 운전업무 대신 초겨울로 접어드는 11월에 사무실 밖에서 늦은 밤 10시까지 10시간가량을 서 있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피해 조합원은 야외주차장에서 열흘간 멍하니 선 채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야기 셋

2009년. 취업규칙이 개정됐다. 노동자 절대 다수의 압도적 찬성으로. 노동조건이 개선된 것일까. 오히려 예전에는 저임금이라 할지라도 최저임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높았던 시간급이 2009년에 이르러서는 최저임금에 맞춰졌다. 2005년과 비교해 월급은 겨우 2만2천원(공제 전) 인상된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사용자의 취업규칙 개정 목적은 따로 있었다. 징계사유가 기존 20가지에서 48가지로 확대되면서 구체적 세부항목까지 더하니, 그 내용만 A4용지 10쪽에 달했다. 해고사유 역시 기존 15가지에서 무려 102가지로 확대됐다. 남아 있던 조합원들은 개정된 취업규칙에 따라 수십 가지의 징계사유로 징계를 받았다. 노동위원회 위원들은 그 많은 징계사유를 보며 해고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중 몇 가지만 추려 징계사유로 인정하면서 조합원의 징계는 정당하다는 사용자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이야기 넷

2010년. 일반적으로 버스사업장은 격주나 보름 단위로 주·야간 교대근무를 한다. 1일 장시간 노동이 사고로 이어진다는 통계자료도 있고, 서울특별시의 권고사항이기도 하다. 이 마을버스 회사에도 비조합원은 교대제 근무를 한다. 반면 조합원들은 돌아가면서 전일제 근무를 한다. 새벽에 출근해 오전근무를 하고, 퇴근했다가 불과 3~4시간 뒤 오후근무를 위해 다시 출근해서는 오후 10시쯤 다시 한 번 퇴근을 한다. 대표이사가 바뀌기 전까지 지급됐던 별도의 수당이 사라졌고, 출·퇴근에 따른 실비지원도 없었다. 하루 16시간을 회사에 매여 있어야 한다. 일상생활의 어려움과 누적된 피로로 건강상태는 심각하다. 그래서 노동위원회에 부당인사명령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그러자 회사는 심문회의가 개최되기 전에 교대제 근무로 바꾸면서 그 자리를 다른 조합원으로 대체했다. 그렇게 사건은 종결됐다.


그리고 … 끝

2011년. 회사가 또다시 취업규칙을 개정했다. 핵심내용은 기존 정년을 65세에서 64세로 단축하는 것이다. 취업규칙을 압도적 찬성으로 개정하는 것은 이 회사의 관행이다. 개정 전까지 남아 있던 조합원은 불과 세 명. 그중 두 명이 개정 취업규칙의 정년규정을 적용받았다. 회사가 무엇 때문에 취업규칙을 개정하려 했는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결국 그들은 정년을 채워(?) 회사를 떠났다. 남아 있던 마지막 한 명 역시 결국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한다. “혼자 남아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면서.

그렇게 노조 하나가 사라졌다. 그럼 이제 이 마을버스 회사에는 평안이 찾아온 것일까. 협력적 노사관계를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노사대등의 원칙에 따라 노동조건이 결정될 수 있게 된 것일까. 시민의 발목을 잡는 불법파업의 근절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게 된 것일까. 여전히 남은 것은 해고사유 102가지를 포함한 두터운 취업규칙 징계사유들 뿐이다. 그리고 이 회사는 최근 버스회사 한 곳을 더 인수했다고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