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박성국 매일노동뉴스 대표와 박준우·김철희 공인노무사와 함께 이달 2일부터 7일까지 태국노총과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태평양지역사무소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남아시아의 노동 상황을 살펴보고 교류 확대를 모색하기 위해 진행됐다. 3일 오전 태국노총을 방문했고, 같은날 오후에는 ILO 아시아태평양사무소를 찾았다.

이번 방문은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나라 내부 상황과 문제에만 집착하던 필자에게 아시아와 세계에 대한 눈을 열어 준 소중한 계기가 됐다. 태국노총을 방문해 그곳 상황을 전해 들으면서, 필자는 생전 알지 못했던 열악한 노동환경을 접하게 됐다. 최저임금은 정부가 임의로 정하고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현실,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은 물론 산업안전제도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

태국노총에는 전체 노동자 3천800만명 중 1.4%인 50만명 정도가 가입해 있다. 하지만 정부가 초기업단위노조나 연합단체를 허용하지 않아 연맹이나 산별노조는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단체행동권은 고사하고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게 태국 노사관계의 현실이다.

태국 노동자들의 현실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어 보였다. 태국노총 관계자들과 두 시간 넘게 간담회를 갖고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최대 이슈는 최저임금이었다. 현재 일급 200바트(7천600원 정도)인 최저임금을 300바트(1만1천500원) 정도로 올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요구마저도 실현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산업안전 문제와 정부의 노조탄압 등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방문단을 반갑게 맞아 준 사빗 태국노총 대표와 활동가인 삭티나씨 등과 "앞으로 자주 교류하자"는 말을 주고받았다. 방문단은 그곳을 떠나면서 '어떻게든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남아시아 노동상황에 관심 가져야


이날 오후에는 방콕시내 유엔본부 건물에 있는 ILO 아시아태평양지역사무소를 방문했다. 크고 깨끗한 건물에서 엄중한 경비시스템을 통과하면서 태국노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빌솔터 테크니컬팀 다이렉트와 존리콧 정부부처·노사관계 전문위원, 안봉술 노조담당 전문위원 등 ILO 관계자들로부터 남아시아 노동현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태국을 비롯해 베트남·캄보디아·스리랑카·라오스 등 대부분의 남아시아 국가에서 노동법과 근로자 보호 제도는 한결같이 재설계 필요성이 크다는 생각을 했다.

남아시아 국가들은 현재 한국·일본 등의 도움을 받아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 제도를 재설계하는 단계에 있었다. 하지만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노사관계 등에 대한 폭넓은 교류가 절실해 보였다.

한국 노동계도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들 나라의 노동상황이 한국과 결코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당장 한진중공업의 경우 인건비가 저렴한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물량이 이전되면서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있지 않은가.

ILO는 ‘양질의 노동’(Decent Work)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도 국내뿐 아니라 남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국가의 노동자가 양질의 노동을 달성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노조의 사회적 책임 고민할 때

태국노총과 ILO 방문을 마무리하면서 노동계의 국제연대와 공인노무사의 역할에 관해 생각하게 됐다. 그동안 한국 노동계는 국내의 여러 가지 노동현안에 매몰돼 노동문제를 글로벌한 시각에서 바라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물론 공공부문까지 앞 다퉈 해외로 진출하는 상황이다. 이제 한국 노동계도 신흥아시아 국가의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을 지원할 때가 됐다.

한국의 대기업과 다국적 자본에 대한 감시, 특히 아시아 국가에서 최저 노동조건 확보와 안전한 작업환경 보장을 위한 한국 노동계의 연대와 지원은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 측면에서는 물론 궁극적으로 한국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공인노무사회, 제도 설계에 참여해야

근로기준·근로감독·산재보험·고용보험·산업안전 등 남아시아 노동행정 분야에서도 새로운 제도 설계와 지속적인 컨설팅이 요구된다. 이미 ILO와 한국 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ILO-Korea 프로그램은 산재보험 등 제도설계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성과를 더욱 공고히 하고, 한국의 노동 분야 제도를 아시아 국가들에게 전수하는 데 있어 민간 노동전문가집단인 한국공인노무사회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와 ILO가 아시아 국가들의 산재보험 등 제도를 설계하는 역할을 맡고, 공인노무사회가 현장에서 해당 국가의 경영계와 노동계에 대한 실무적인 컨설팅을 제공해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과 같은 역할분담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인노무사회가 회원들의 이익증진뿐 아니라 공익적 측면에서 ILO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아시아 국가의 노동행정 분야 지원에 앞장설 때 공인노무사의 사회적 지위는 물론 한국공인노무사 제도의 세계적 위상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태국 방문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이 처한 현실을 볼 수 있게 해 주고, 그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고민하는 기회를 마련해 준 <매일노동뉴스>와 ILO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앞으로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확대돼 관심 있는 분들이 더 많이 참여하는 정기적인 연수 프로그램으로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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