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은 러브스토리. 하지만 둘 사이 거리가 멀어 손가락 하트로는 어림없다.철문을 열어다오, 줄리엣이 외친다. 극단적인 로우앵글이다.

“277일, 기적 같은 시간이었고 험난한 날들이었지만 희망버스가 만들어 낸 여론이 국회를 움직였습니다. 마침내 요지부동이었던 한진 자본을 움직였습니다. 이제 승리를 만들어 내는 마지막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있기에 살아서 땅을 밟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 봅니다.”

9일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 부산역 광장 끄트머리에 세워진 작은 트럭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육성이 울려 퍼졌다.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이 실린 카랑카랑한 말투는 여전했지만 중간 중간 기침소리가 났다. 그때마다 희망버스 승객들은 아, 아, 하고 안타까운 탄식소리를 냈다. 가슴을 쳤다. 눈물을 훔쳤다.

5차 희망버스는 끝내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어느 때보다 희망에 부풀었다. 김진숙, 그와 먼발치에서 애달피 바라보지 않고 땅위에서 눈을 맞출 그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다같이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희망의 계단이 되자”

“이번이 마지막 희망버스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도 한결 가볍고 날씨도 좋고. 진짜 가을소풍 가는 기분이에요. 하하”

지난 8일 정오 서울시청을 출발한 희망버스 8호차는 조금 들떠 있었다. 대학생들 무리에 시민 몇몇이 듬성듬성 있는 버스 안에서는 하루 전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채택한 한진중공업 권고안이 화제였다. 조남호 회장이 여야 의원의 권고를 3시간 만에 수용했다는 한진중 해법은 해고자들을 1년 뒤 재고용하고 그동안 생계비 2천만원을 지급하되, 김진숙 지도위원을 비롯한 크레인 고공농성자의 철수를 전제로 시행한다는 것이었다.

“1년 뒤 재고용한다? 조남호 회장을 어떻게 믿어요. 이건 시간끌기예요. 해고자들한테 2천만원 주고 끝내려는 꼼수 아닐까요.” 다음 카페 ‘8·15평화행동단’에서 활동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시민은 권고안 이행을 우려했다.

“그래도 고지가 멀지 않았어요. 조남호 회장이 어쨌든 수용했잖아요. 한번 꺾인 기세에는 가속도가 붙을 것이고…. 우리는 지금 희망을 보러 가고 있어요.” 경기도 이천에서 출발하는 차가 없어 2시간 걸려 서울시청까지 왔다는 시민 맹아무개씨의 목소리에 기대감이 묻어났다.

우려와 기대가 공존했지만 가슴에 품은 바람은 똑같았다. 8호차 희망버스 승객들은 이제 희망의 계단이 되고 싶다고 했다. 김진숙, 그가 276일째 웅크리고 있는 크레인에서 무사히 내려올 수 있도록.


가을소풍인줄 알았는데…

창 밖으로 빌딩들이 사라지고 노릇노릇하게 익은 들판이 나타날 무렵 8호차 ‘깔깔깔’이 주섬주섬 일어섰다. 서울지역대학생연합 연대사업국장이라고 밝힌 '깔깔깔'은 키가 커서 버스 천장에 닿을까 봐 고깔모자를 쓰지 못했다.

“아시다시피 어버이연합 같은 보수단체에서 희망버스를 벼르고 있습니다. 썩은 계란과 오물을 투척한다는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그는 탬버린과 트라이앵글·부부젤라·캐스터네츠를 나눠 주며 "보수단체의 자극에 일체 응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5차 희망버스의 부제는 ‘가을소풍’이다. 부산역에서 만나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남포동 비프(BIFF)광장까지 신나는 밴드공연과 함께 퍼레이드를 벌인다는 구상이었다. 퍼레이드를 방해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을 만나면 응수하지 않고 악기들을 울려 흥을 더한다는 게 규칙이었다. 밤새도록 난장을 벌이고 이른 아침 가을운동회로 힘 다지기를 하자는 계획도 있었다. 이런 가을소풍·가을운동회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부산역에 도착한 직후였다.


골목 돌아돌아 물대포와 만나다

오후 6시 무렵 부산역 앞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부산역 광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모조리 막아선 경찰과 길을 열라고 외치는 희망버스 승객 3천명이 엎치락뒤치락 한데 섞여 있었다. 경찰은 이날 60개 중대 병력을 부산역과 영도다리 주변에 배치했다. 부산 진입 톨게이트와 부산역으로 가는 구덕터널 입구에서 전세버스에 대한 검문검색을 실시했다.

희망버스 8호차가 도착했을 때 이미 부산역 광장에는 10여대의 버스가 광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경찰이 막아 선 광장 안쪽에서는 보수단체에서 주최하는 집회가 열렸다. '전쟁선포' 머리띠를 두루고 군복을 입은 보수단체 회원들이 '희망버스 오지 마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그 뒤로 한진중공업 외부개입세력 반대 부산범시민연합 명의로 '절망버스와 전쟁을 선포한다', '5차 희망버스 중단하고, 집단노숙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펄럭였다.

길이 꽉 막혀 부산역 광장을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깔깔깔'은 "골목길로 빠져서 남포동 비프광장으로 가면 된다"고 안내했다. 퍼레이드에 쓸 소금꽃 연등에 불도 밝히지 못한 채 삼삼오오 걷고 뛰어서 남포동에 도착했다.

오후 8시가 넘어서자 5천여명으로 불어난 희망버스 승객들이 남포동 국제시장 사거리 번화가를 가득 메웠다. 경찰이 음향기기를 실은 차량을 출입을 막아 앰프 하나로 즉석 집회가 열렸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앞줄에 앉자 사회자를 빙 둘러 원형무대가 만들어졌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마이크를 잡고 “정리해고 철회 없는 한진중 문제 해결책은 속임수”라고 호통을 쳤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이 감색으로 물들인 제주 특산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 “강정에 부는 평화는 한진에서 시작한 희망과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 해고자를 격려하는 발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상가 불이 꺼진 밤 11시쯤 85호 크레인이 있는 영도조선소로 가는 행렬이 시작됐다. 하지만 곧 영도대교 들머리인 남포동역 로터리에서 멈췄다. 경찰은 캡사이신이 섞인 두 대의 물대포를 앞세워 해산을 경고했다. 한진중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 20여명이 연행되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도 경찰에 잡혀갔다. 행렬은 영도대교를 끝내 넘지 못한 채 비프광장으로 돌아섰다. 이날 연행된 이들만 59명에 이른다고 희망버스 기획단은 밝혔다.


남포동 밤은 85호 크레인 꿈을 꾸고

자정 넘어 네온사인이 모두 꺼진 남포동 비프광장은 희망버스 참가단의 숙소가 되고 놀이터가 되고 사랑방이 됐다. 벌써 5번의 경험이 쌓인 덕분인지 두툼한 침낭과 텐트도 눈에 띄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들이 오가고 희망버스 기획단이 준비한 소소한 행사들이 펼쳐졌다.

김 지도위원과 함께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해고자 박성호씨의 아내 정만심씨는 밤늦도록 두 자녀와 자리를 지켰다. “위(크레인)의 온도와 아래 온도는 다르다”고 말한 그는 “환노위 권고안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사람 먼저 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 지도위원과 남편의 안위가 걱정인 정씨는 “부족한 대로 권고안을 받아들이고 정리해고 문제는 온 국민과 함께 제도를 바꾸는 투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크레인 고공농성자 박영제씨의 아내 강갑래씨는 생각이 달랐다. 남편이 크레인에 올라간 후 매일 저녁을 굶는다는 그는 “쥐뿔도 가진 게 없는 해고자가 뭘 더 내놓고 무엇을 더 타협할 수 있겠냐”며 “2년 동안 싸운 게 돈 2천만원 받자고 한 게 아닌데 이렇게 무너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85호 크레인의 꿈을 꾸며 그렇게 남포동의 밤은 깊어갔다.


떠나는 승객, 남은 정거장

9일 아침이 밝았다. 희망버스 기획단은 오전 8시부터 영도조선소 앞에서 가을운동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수포가 됐다. 경찰은 오전 7시20분부터 비프광장에 들이닥쳐 주먹밥과 어묵국물로 아침을 때우던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떠밀었다. 이날 오전에도 영도로 가는 부산대교와 영도대교는 여전히 철통같이 막혀 있었다. 먼 곳에서나마 김진숙 지도위원의 발치를 바라보고 힘내라 소리치는 것조차 가로막힌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부산역 광장에 모여 아쉬움을 달랬다.

오전 11시 집으로 돌아가는 희망버스를 파란색 작업복과 조끼를 입은 한진중 해고자들과 가족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배웅했다. 김 지도위원은 전화음성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역사가 되고 전설이 된 희망버스 승객 여러분. 지켜보는 분들이 더 애달프고 가슴 아파했기에 제가 살아 있습니다.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마음 아프지 않고 이 싸움이 잘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땅에서 기쁘게 만날 그날까지 투쟁하겠습니다.”

한진중 해고자들과 김 지도위원은 고심할 것이다. 그리고 선택할 것이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그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김진숙, 그가 땅을 내딛는 날까지 희망버스는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믿음을 남기고 부산을 떠났다.

“김진숙·희망버스는 거대한 극장”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영화인 한진중 방문해 지지선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농성한 지 184일쯤 됐을 무렵, 영화배우 김여진씨는 트위터에서 그에게 '영화 같이 보러 가자'는 멘션을 남겼다. 김 지도위원은 "꼭 살아 내려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김여진씨는 그 말이 가슴을 쳤다고 했다. 아, 이 사람 목숨을 걸고 있었구나…."

김 지도위원과 함께 영화를 보고 싶은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던 지난 8일 85호 크레인을 찾았다. 이날 오후 4시 정지영·변영주 감독과 최진욱 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영화인 100여명은 부산 해운대구 노보텔호텔 앞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부산시가 "영화제 기간 중 희망버스가 큰 오점을 날길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영화인들은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실은 영화제 기간에 희망버스가 온다는 게 아니라 1년이 다 되도록 문제 해결을 못하는 부산시의 무능"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영화인 희망버스도 경찰의 제지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들어서지 못했다. 한 시간여 실랑이 끝에 정지영 감독과 권칠인 감독·이준동 나우필름 대표 등 3명의 대표가 걸어서 85호 크레인으로 향했다.
정지영 감독은 김 지도위원과 전화가 연결되자 안부를 물었고, 자신이 연출한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러 와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김 지도위원이 살아 내려와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셈이다.

▲ 이것은 인도영화다. 틈만 나면 춤 추고 노래한다. 온갖 우스꽝스런 악기를 들고 어디든 난장을 벌였다.
▲ 이것은 메이킹필름(Making Film). 그들은 영화감독이며 스텝이다. 어렵게 크레인 앞을 찾았고 인사를 했다. 어둠 속 김진숙 지도위원은 조명을 돌려 화답했다.

▲ 액션스릴러 더하기 공포물. 막 잡아갔다. 60여명이 주연배우로 나섰다.

▲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따진다면 좀비물. 한국영화로는 '이웃집좀비' 쯤 되겠다. 아침이면 벌떡벌떡 거리에서 부활한다.

▲ 재난영화다. 사람들 물밀듯 행진을 나서는데 물대포 터져 물난리가 났다.
▲ 영화 포스터다. 제목은 '정리해고 철회하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