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미국 청년들의 월가 점거가 6일로 20일째다. 청년들이 주도한 시위는 점차 확산돼 노조도 동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위는 월가를 벗어나 미국 전역으로 거세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 심각한 재정적자가 이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했다는 분석이 다수다. 군중이 방향을 월가로 향한 것은 이런 문제의 원흉을 금융자본으로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상황도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중소기업이나 노동자들의 그릇은 자꾸 비어 간다. 쌓이는 것은 나라 빚과 대기업 곳간뿐이다. 월가 시위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금융자본의 심장에서 시작된 변화”

이수봉

민주노총
사무부총장

한 잎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안다고 했던가. 미국 월가에서 벌어지고 대규모 시위 사태의 핵심은 금융자본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다. 일반인들의 수백 배가 넘는 월급을 받는 금융사 사장들의 부도덕을 공격하는 등 자본주의 위기의 핵심에 금융자본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하고, 이제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사회 양극화와 국민들의 팍팍한 삶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동안 주로 신자유주의라는 추상적 언어로 뭉뚱그려졌으나, 이제 재벌과 금융자본의 문제가 주원인이라는 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기할 때가 됐다.

더 이상 은행의 이자놀이에 볼모가 된 국민경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은행과 유착된 재벌의 전횡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경제 자체가 회생할 수 없다. 이제 전세계적으로 임계점에 왔고 변화의 출발은 적절하게도 금융자본의 심장 월가에서 시작됐다.

“한국도 곧 위기, 내년 총선 뒤 대타협해야”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실장

미국 월가의 시위는 세계 패권국가였던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해를 그대로 드러냈다. 시장만능주의 세계화 전략에 의거해 미국이 80년대부터 추진했던 감세·노동유연화·규제완화 등 ‘탑 다운’ 정책의 결과다. 그 여파가 2008년 리먼 사태를 계기로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더블딥(이중 위기)이 기정사실화됐고 비상경제체제로 돌입했다. 조만간 실물경제에도 위기가 찾아 올 것이다. 3년 만에 위기가 눈앞에 찾아왔다. 특히나 정권 말기인 상황에서 현 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할 것으로 우려된다.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실업대란이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는 내년 총선에서 새 판을 짠 뒤에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해야 한다. 현 정권과는 대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2008년 금융위기 때 입증됐다. 새로운 정치권력이 들어서기 전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의 청년들도 공유할 ‘꿈’이 필요하다

조성주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꿈을 공유하자’ 68년 프랑스 파리에서 외쳐진 구호가 아니다. 2011년 금융자본주의의 심장인 월 스트리트 거리에서 미국의 청년들에 의해서 울려 퍼진 구호다. 월가의 시위는 일군의 청년실업자들이 텐트를 치면서 시작됐다. 최근에는 기존 노조들과 시민단체들도 가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래세대가 더 이상 절망적인 상황을 참지못하고 나선 것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이 월가 시위는 한국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국만큼이나 경제적인 양극화가 심하고 청년들의 미래도 어둡다. 여기서는 금융자산만이 아니라 주택과 토지마저도 극소수의 부자들이 모두 가지고 있다. 이는 곧 미국처럼 한국의 미래세대의 절망을 의미한다. 월가 시위에서도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도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고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결혼도, 연애도, 출산도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단어가 지금 한국청년들의 절망을 의미하는 단어다. 그렇다. 한국의 청년들에게도 공유할 ‘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월가시위와 같은 것들이 일어날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년들이 이 사회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바로 그 ‘꿈’에 대해서 이제 한국사회의 정치와 언론·노동계 모두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 기존 정당정치, 기업에 대한 반감과 다른 이들에 대한 지지 등으로 표현되는 어떤 열망이 혹여 그런 새로운 ‘꿈’과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을 공격하라”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운영위원장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사람들은 “1%를 위해 99%가 희생할 수 없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1%의 부를 위해 99%가 일하고 희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분노, 금융자본의 탐욕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대부분 나라 국민이 부딪힌 빈곤과 실업의 문제, 수십 년을 열심히 일했지만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비참한 우리의 삶이 금융자본의 탐욕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 분노가 금융 세계화의 중심, 월스트리트로 향하고 있다. 금융을 통해 전 세계의 부를 약탈했던 금융 세계화, 그것은 미국 월스트리트가 퍼뜨린 시스템이다. 금융 세계화의 출발점인 미국에서 반성이 시작됐고, 분노가 시위로 표출됐다. 그 반성과 분노 역시 세계화되고 있는 것인 지금 상황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재벌·부자의 횡포에 자영업이 몰락하고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청년은 일자리가 없어 신음한다. 열심히 일했지만 빈곤은 악순환했다. 지난 30년간 경험한 일이다. 증권사·은행 등 금융기관은 금융위기 속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냈다. 그들이 낸 이익은 누가 만든 것인가.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여전히 대형 투자은행(IB) 설립과 헤지펀드 허용을 추진하는 등 실패한 미국 금융시스템을 그대로 뒤쫓고 있다. 이 정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투기자본감시센터는 투기자본을 넘어 금융 일반, 그들의 탐욕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조직하려는 활동을 준비 중이다. 이제는 대중이 분노를 표출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을 공격할 때다.

“금융 공공성 강화하는 계기 돼야”

정명희

금융노조 정책부장

엘리트에 속하는 중산층마저도 지속 불가능한 금융시스템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태생적으로 지속하기 힘든 시스템이다.

이번 대규모 시위는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연방은행의 주인으로 행세하며 정계·산업계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현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융위기에 처한 미국·프랑스·영국 등의 다국적 금융회사들에게 자금을 공급해주고 분식회계를 통해 이를 감추는 사기행각을 벌인 것이 미국 청문회를 통해 발견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의 중산층도 잘못된 미국 금융시스템의 근본적 문제를 느끼고 분노한다.

이것이 금융시스템 사유화에 대한 경계의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 한국의 경우도 금융산업의 과대팽창을 경계해야 하며 금융의 공공성을 보다 강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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