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사회를
여는연구원
부원장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거창한 구호 아래 지난달 17일 월가에서 시작된 미국 청년들의 작은 움직임이 3주째를 넘기면서 조금씩 확산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 수가 수천명을 넘었고, 뉴욕 경찰이 830여명을 체포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주류 언론매체들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정도가 된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수년째 계속된 고실업으로 고통 받는 미국의 청년들이 ‘아랍의 봄’에 착안해 ‘미국의 가을’을 만들고 있다. 대다수 미국 시민들은 월가가 일으킨 전대미문의 글로벌 경제위기로 실업과 소득감소를 당하며 수년째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구제금융으로 위기를 탈출하고서도 반성 없이 고액 연봉과 인센티브 잔치를 벌이고 있는 월가에 대한 분노가 작은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3년 만에 발끝까지 닥쳐온 경제침체를 목도하면서, 그리고 미국 정치권이 합의한 긴축으로 미래에 겪을 추가적인 고통을 바라보면서 표현되고 있는 절박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우리는 99%다(We are the 99%)”, “월가는 미국인 99%와는 무관하다. 그들은 대기업과 부자 등 1%의 미국인만을 위해 일한다. 정부도 의회도 모두 이들 편이다”, “어떻게 재정적자를 해결할 것인가. 전쟁을 중단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려라” 등의 구호는 지금 미국 시민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저항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 준다. 분노의 화살이 월가의 금융자본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 자본주의의 정점에 재벌로 표현되는 대기업집단이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친기업적인 정부의 규제완화·감세·고환율정책 지원을 받으면서 경제위기 와중에서도 사상 최고의 실적을 거두고 있다. 삼성그룹이 지난해 24조원, 현대차그룹이 13조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는 등 재벌 대기업집단은 지난 2년 동안 당기순이익이 각각 40%, 66% 증가했다. 경이적인 증가율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실질소득은 감소하거나 정체했다.

미국의 월가에 비견할 수는 없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또 다른 축에는 철저히 수익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은행이 있다. 지금 국민들은 9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를 안고 있지만 은행들은 올해 상반기에만 10조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경제위기가 다시 몰아치기 시작했던 3분기에도 대략 3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로 예대마진 격차가 확대되면서 얻은 수익이다. 예금이자는 낮게 주고, 대출이자를 올리면서 수익이 발생했다.

한국에도 고용불안과 소득정체, 그리고 가계부채의 그늘을 3년째 벗어나지 못한 99%의 국민이 있다. 반면에 경제위기 와중에서 감원과 임금 동결, 정부 지원 등에 힘입어 위기를 모르고 수익행진을 벌이고 있는 1%의 재벌 대기업집단과 은행들이 존재한다. 미국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서도 청년실업이 심각하고 소득이 낮아 일하는 빈곤층(Working Poor)이 계속 늘어나 7.7%에 이른다. 전체 빈곤층은 5분의 1을 넘는다. 복지요구가 거센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국민들의 분노는 정부와 여당에게 집중되고 있을 뿐 정작 자본, 특히 한국에서 자본을 대표하고 있는 재벌 대기업집단과 은행으로 향하고 있지 않다. 일하는 노동자와 국민에게 분배돼야 할 몫은 정부의 곳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위기 와중에서도 현금과 자산이 넘쳐나는 곳은 재벌 대기업집단의 창고이며 은행의 금고다.

적지 않은 부분이 파견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거나,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인하하거나, 골목상권을 잠식해 채운 현금일 가능성이 있다. 이자로 채워진 금고일 가능성이 있다. 이제 99%의 한국 국민들도 1%의 거대자본을 향해 정당한 분노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여당에 맞서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99대 1의 불공정한 역학관계가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경제불황의 긴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우려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유럽의 위기가 일시적인 구제금융과 유동성 공급으로 치유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의 더블 딥(이중침체) 위기가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난 3년의 교훈이다. “(우리처럼) 외국인 투자 비중이 30%나 되는 나라는 없고, 대외의존도는 90%를 넘는다. 때문에 세계적 침체의 영향을 한국이 많이 받게 된다”는 것이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고백이다. 유럽과 미국의 위기가 조만간 한국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1%의 자본에 저항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bkkim21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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