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 가산동에서 일회용 주사기를 생산하는 민주화섬노조 한국메디칼사푸라지회(지회장 김혜숙) 조합원들의 얼굴엔 요즘 전에 없던 화색이 감돈다.

그동안 쫓기듯 점심을 먹고 일터로 돌아오던 분주함에서 벗어나 동료들과 커피한잔을 나눌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1970년 설립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점심시간 40분’이라는 철칙(?)을 고수해왔다. 허겁지겁 먹는 점심은 그 자체로도 불편했지만 직원을 대하는 회사의 태도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아 불만은 나날이 커져갔다.

1990년 노조를 결성한 이후 지회는 꾸준히 이 문제를 개선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측은 요지부동이었다.

회사는 하루 10분씩 두 차례 휴식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1시간 점심과 다를 바 없다는 태도였지만 조합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위생 관리가 필수적인 업무의 특성상 휴식시간 동안 규칙으로 정해진 작업복 교체와 신체 소독에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업무의 연장이라는 얘기다.

올해 단체협상에도 이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됐다. 화섬노조의 지원 아래 올해 총 16차례의 교섭이 벌어졌다. 여전히 꿈쩍하지 않은 사측의 태도에 지회는 지난달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이에 지회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지난 20일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설립 이후 최초였다. 당황한 회사는 이틀 만에 점심시간을 1시간으로 늘리는 것 외에도 지회의 많은 요구를 수용했다. 여기에는 △생리휴가 별도 인정 △기본금 5만1천원 인상 △정년 1년 연장 △근로시간면제 현행 유지 △고등학교 입학금 지원도 포함됐다.

노사는 27일 조인식을 갖고 양측 모두 협상 내용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했다. 파업은 철회됐다.

김혜숙 지회장은 “(이번 파업은)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보장하지 않은 오랜 관행에 조합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라며 “협약 내용에 대다수의 조합원이 찬성한 것처럼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은 것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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