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민주화섬노조 송원산업지회

단체협약에도 기록이 있다면 송원산업은 눈에 쏙 들어오는 한 가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노조 설립 이후 100차례가 넘도록 노사협상이 진행됐지만 단 한 차례도 손을 맞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송원산업은 산화방지제·PVC 안정제를 생산하는 화학기업이다. 65년 설립한 뒤 해마다 성장을 거듭한 중견업체다. 이 회사에 노조가 생긴 것은 98년. 당시 전체 직원의 절반이 훌쩍 넘는 127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그런데 회사측은 노조설립을 이유로 조합원 9명을 해고했다. 노조는 "보복성 해고"라고 반발했다.

회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명 변호사를 선임해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을 무산시켰다. 지레 겁을 먹은 사람들이 하나 둘 노조를 빠져 나갔다. 당시 서른이 채 되지 않았던 한 젊은 대의원은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전임자의 임기가 끝난 2000년 1월 이후 11년째 조직을 이끌고 있는 홍봉기(42·사진) 민주화섬노조 송원산업지회 지회장. 그는 오랜 시간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회사에 맞서 질긴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

“각종 징계와 불이익이 계속되자 노조설립 이듬해엔 조합원이 절반으로 줄더군요. 그때를 기점으로 회사는 오늘까지 신입사원을 단 한 번도 공개채용하지 않았습니다. 결원이 생기면 임원들의 줄을 타고 들어옵니다. 노조 가입은 꿈도 못 꿀 일이죠.”

이런 환경 속에서도 홍 지회장은 꾸준히 회사와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의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 얼마나 무리한 요구를 했기에 100번이 넘도록 고개를 저었을까.

“얼마 전 상급단체에서 내려온 홍보물을 사내게시판에 걸었는데, 회사측 관계자가 그걸 찢더라고요. 작은 다툼이 벌어졌죠. 우리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닙니다. 노조 사무실 제공, 게시판 사용, 근로시간면제 인정 등입니다. 노조 활동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보장해 달라는 것뿐이에요.”

지회에서 활동한다는 이유만으로 승진에서 제외되고, 지난 5월 창립기념일엔 근무시간을 조정하면서까지 행사를 방해하고…. 홍 지회장은 회사측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3월에는 외국 출신 부사장이 노무관리를 맡는 것을 보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지만, 역시나였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더디지만 조합원들을 믿고 회사측을 변화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현재 남아 있는 조합원은 33명입니다. 전 직원의 10%도 되지 않아요. 그래도 모두 핍박을 견뎌 왔기 때문에 결속력 하나는 대단해요. 15년 이상 일한 베테랑들이라 회사가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올해는 어떤 협상도 없었는데, 임금이 10% 올랐어요. 회사가 노조를 탄압하는 진짜 이유는 우리의 잠재된 힘이 두렵기 때문 아닐까요.”

지회는 지난달 101차 교섭을 끝냈다. 그리고 회사의 요청에 따라 11월에 교섭을 재개하기로 했다.

“고2 때 담임선생님이 수학을 가르쳤는데, 그분이 전교조 소속이었어요. 수학뿐 아니라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던 분입니다. 전역 후 알음알음 찾아뵈니 떡볶이집을 하시면서 열심히 살고 계시더라고요. 지회장을 하면서 그분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지만 한번 끝까지 가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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