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때 아닌 ‘독재’ 논란이 벌어졌다. 헌법재판관 인준 지연사태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허영 헌법재판연구원장이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3대 3대 3의 지분을 갖고 재판관을 추천하는 것은 '박정희 독재 정권 때부터 이어 온 패턴'으로 지양돼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발단이다.

허 원장의 발언은 여야 공방을 불렀다.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들은 ‘독재’라는 표현을 문제 삼으며 속기록 삭제를 요구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독재 발언이 헌법학자로서의 사견인지, 헌법재판연구원장이라는 공직자로서의 입장인지 밝히라며 허 원장을 추궁했다. 민주당쪽은 “독재를 독재라 했는데 뭐가 문제냐”며 맞섰다. 이때 허 원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독재 발언은) 학자로서의 사견”이라며 속기록 삭제를 요청했다.

지난 8월22일. 헌법재판소 앞으로 두 장의 ‘참고자료철회서’가 접수됐다. 청구인은 현대자동차 주식회사, 대리인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다. 현대차는 헌재에 내놓은 두 건의 헌법소원에 대한 참고자료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철회서에 나온 자료철회 이유는 “사정에 의하여”라는 짧은 문구뿐이어서, 어떤 속사정이 있는지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현대차가 철회하겠다는 자료의 작성자가 바로 허 원장이다. 허 원장은 김앤장의 의뢰를 받아 4월8일 헌재에 자료를 제출했다. 해당 자료는 옛 파견법의 ‘파견기간 2년 경과 후 정규직 간주 조항(고용의제 조항)은 위헌’이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과 서울고법이 "2년 이상 일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판결을 연이어 내놓자 현대차는 김앤장을 통해 고용의제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제기했다. 이를 헌법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참고자료를 허 원장이 작성해 준 것이다.

그런데 허 원장은 4월7일 헌재 산하 헌법재판연구원장에 내정돼 같은달 11일 취임했다. 당연히 자료 제출시점과 원장 내정시점을 놓고 뒷말이 나왔다. 결국 자료를 낸 지 4개월여 만에 해당 자료는 철회됐다. ‘헌법학자로서의 사견’이 삭제된 셈이다. 내로라하는 헌법학자의 견해가 이렇게 쉽게 철회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헌법학자 허영이 헌재에 냈던 의견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구 파견법의 고용의제 규정은 일자리 창출의 가장 큰 기여자인 기업이 헌법상 누리는 기본권적 가치와 조화할 수 없는 근로자만의 이익을 편파적으로 추구하는 내용이므로 그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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