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

변호사

처음 봤을 때 그녀의 모습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하게 생각나는 것은 빡빡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이다. 그녀의 직업은 학습지교사. 회사에서 제공하는 교재로 회사가 지정한 구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업무보고서를 작성해 회사에 제출하는데도 아직까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그들, 학습지교사 중 한 명이었다.


그녀와의 첫 사건은 가처분위반 간접강제금 부과사건이었다. 법원에서는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아도 회사와는 2000년부터 수차례 단체협약을 체결해 온 학습지노조였다. 회사의 2007년 일방적인 수수료 개악(인하)에 반대해 투쟁을 시작했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회사는 교사들의 농성을 막기 위한 가처분신청을 내고 법원은 야속하게도 이를 인용하는 결정을 했다. 게다가 가처분결정에서의 금지행위를 위반하면 1회당 100만원의 간접강제금 부과한다는 내용 또한 인용됐다.

그렇지만 그녀도, 학습지노조 조합원들도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는 투쟁을 포기할 수 없었다. 회사의 2007년 수수료 개악으로 많게는 100여만원씩 임금이 삭감되는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투쟁의 결과로 그녀에게는 2천만원의 간접강제금이 부과됐다. 회사 앞에서 집회하느라 앉아 있고 수수료 개악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던 대가로 그녀의 어머니가 물려주신 집은 압류되고 경매개시가 결정됐다.

간접강제금 부과에 대해 집행문부여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점거한 것은 아니고 피켓의 표현이 금지표현과 상이하고 등등의 주장을 법원에 하는 사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에 설정돼 있는 채무가 많아 경매개시결정이 취소됐다.



얼마 후 그녀는 머리를 빡빡 민 채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타났다. "포기할 수 없다"며 삭발과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학습지교사들에게 회사는 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명예훼손과 불매운동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학습지교사들만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종교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는 불매운동의 책임을 6명의 학습지교사와 학습지노조에게 묻고 있었다.

회사가 고소한 사건은 기소가 되고 학습지교사들이 고소했던 사건은 대부분 불기소처분된 현실, 회사가 고용한 사설경비용역이 여조합원들을 성희롱하고 추행한 사실을 진술해야 하는 상황, 회사에 대해 위와 같은 사실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어도 증거를 확보하기 힘든 현실은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졌다.

거대한 회사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라는 법제도를 이용해 6명의 조합원을 압박하고 있다.



또다시 만난 그녀는 모자를 벗었다. 조금 자란 짧은 머리를 하고 자료를 잔뜩 들고 나타났다. 2000년 노조설립신고도 했고 회사와 단체협약도 계속 체결해 온 학습지교사들의 근로자성을 황당하게도 2006년 법원은 또다시 부정하고 나섰다. 노조와 해고조합원들은 법원 판결에 대해 다시 한 번 맞서 싸우기로 했다.

회사가 준 교재를 가지고, 회사가 지정해 준 구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일주일에 몇 번씩 사무실에서 조회를 하고, 업무매뉴얼을 지도받고 업무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하는 학습지교사들. 단지 사업자로 등록돼 있고 정해진 장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근로자성이 부정되는 학습지 교사들.

그들은 납득할 수 없다. 자신들이 왜 근로자가 아닌지를. 그래서 다시 한 번 싸우기로 했다.



또 다른 그녀와 그를 우리는 시청광장 앞에서 볼 수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선전전을 진행하고 돈에, 직장에 많은 것을 빼앗겨 왔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투쟁을 하고 있다.

그들은 왜 계속 투쟁을 하는 것일까. 아마도 질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옳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을 그들은 계속해 나갈 것이다. 언젠가 그들이 ‘근로자’로 회사로 돌아가는 날이 오려면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