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이 음주를 한 상태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음주와 직무가 관련이 있다면 직무상재해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해양근로의 특수한 성질에 비춰 볼 때 선내에서 이뤄지는 식사·운동·취침·휴식 등 노동력의 회복을 위한 행위도 선원으로서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에 선원의 직무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선원 김아무개씨는 지난 2005년 8월부터 북한에서 모래를 채취하는 선박의 기관사로 일했다. 그는 2008년 2월 출항을 앞두고 선박회사 지시에 따라 출항준비를 했다. 준비를 마친 김씨는 선박 항해사와 반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했다. 이후 김씨는 다음날 있을 출항에 대비해 선박으로 돌아와 기관실로 내려가던 중 발이 미끄러져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선박회사 "음주 후 발생한 선원의 과실"


사고로 김씨는 외상성 뇌지주막하출혈 등의 상해를 입었다. 김씨는 회사의 치료비로 치료를 받았고, 이와 관련해 차후 어떠한 민형사상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했다. 그런데 서명 당시 김씨는 치료가 종결되지 않은 상태였고, 이미 사고에 의한 정신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퇴원 후 장애증세가 나타나자 김씨는 이 사고가 선원법이 정한 ‘직무상 부상’에 해당한다며 선박회사를 상대로 재해보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산박회사는 김씨가 휴무기간 중 음주을 한 채 부상을 당한 것으로 김씨의 중대한 과실이 사고를 불렀다고 맞섰다.


법원 "노동력 회복 위한 유지행위도 선원의 직무"

법원은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인천지법은 "선원법에 따른 직무상 재해"라고 판결했다.

인천지법은 "선원법에 규정된 ‘직무’란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업무’보다 넓은 개념으로 선원의 ‘직무상재해’는 선원으로서 직무 종사 중에 그로 인하여 발생한 재해와, 선원의 직무에 내재하거나 이에 통상 수반하는 위험의 현실화라고 볼 수 있는 재해를 포함해야 한다"며 "해양근로의 특수한 성질에 비춰 볼 때 선내에서 이뤄지는 식사·운동·취침·휴식 등 노동력의 회복을 위한 행위는 원칙적으로 모두 직무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또 "음주 상태에서 발생한 재해라 하더라도 음주가 직무와 전혀 무관하게 이뤄졌고, 직무수행능력을 현저히 약화시킬 정도에 이르러 선원이 선박소유자의 지배관계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음주 사실만으로 직무수행성을 당연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원은 각서에 대해서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김씨가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적지 않은 액수의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점 △김씨가 정신장애 증상과 법률지식 내지 법률업무 경험의 부족으로 위 각서의 법적인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 △선박회사 직원이 김씨에게 각서의 법적인 의미와 효과에 관해 충분히 설명해 준 바 없는 점 △김씨가 당시 현재의 장해 상태를 예견할 수 있었다면 위 금액으로 합의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시했다.

[관련 판례] 인천지방법원 2009가합2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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