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바야흐로 소송의 전성시대인가 보다. 노조에서 뭔가를 할라치면 어김없이 회사에서 각종 소송이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노조에서도 재판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해고를 당한 자(및 그 동료)가 그 해고가 부당하다는 생각을 말하기 위해서는 각종 가처분과 손해배상의 위협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말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한 사회가 돼 버렸다고나 할까.



‘부당해고’는 법원만의 독점적 표현인가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인 2009년 10월 어느 때였다.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세계적 철강기업의 사내하청지회에서 사용자가 제기한 ‘비방금지가처분’ 서면을 들고 왔다. 내용을 보아하니, “부당해고 규탄한다, ○○○의 하수인, 노조탄압 중단하라”등의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시 해고 관련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었는데, 노동위원회와 2심까지 모두 노조측 주장이 인정되지 않았던 터였다. 이미 송달 거부 등으로 가처분의 심문기일을 상당히 지연했던 상황인지라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별로 반론도 제기하지 못하고 가처분이 인용될 위험이 있었다.

심문기일과 그 이후 여러 차례 공방이 있었지만 가처분은 노조의 패(敗)였다. 당시 노조가 했던 주요 주장은 “부당해고 규탄한다”, “○○○이 부당해고를 자행했다”는 등의 표현은 노조의 의견표현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영역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처분 재판부는 이는 사실에 관한 표현이고, 관련 사건의 2심까지 해고의 정당함이 인정되고 있으므로 회사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입장이었다. 가처분 결정이 있은 후 대법원에서 해고소송의 2심을 확정한 판결이 선고돼 결국 해고에 대해서는 노조의 패(敗)로 확정됐다.

이후 회사와 대표이사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해서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됐는데, 손해배상사건의 1심에서는 회사의 손해배상(위자료) 청구에 대해 회사의 영업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라고 기각됐고, 대표이사 개인의 청구가 일부 인용됐다. 대표이사 개인의 청구가 일부 인용된 것은 가처분 결정과 마찬가지로 “부당해고 자행한 누구누구”식의 표현이 명예훼손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쉽게 수긍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비록 대법원에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지만 당시 노조원들의 행위는 대법원 선고 이전의 행위였고, 법원이 어떠한 해고를 법률적으로 유효라고 판단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은 그에 대한 의견도 밝힐 수 없다는 말인가. “부당해고”가 아니라면 “나쁜 해고”라고 표현하면 되는 것인가. 법원은 어떤 현상에 대해 다툼이 발생할 때 법률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법기구이지, 그 현상에 대한 당사자의 해석까지 독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 얼마 전 선고된 2심에서는 부당해고와 관련한 각종 표현들은 의견을 표현한 것이지 사실적 표현이 아니므로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2년에 걸친 소송 끝에 노조의 주장을 일부 인정해 준 것이다. 다만 “하수인”·“노조 말살” 등의 표현과, 이러한 표현들을 대표이사의 집근처에서 한 행위 등은 대표이사 개인의 인격권 침해라고 보고 일부 손해배상을 인정했다. 인격권 침해 부분은 현재 상고심에 계류 중이다.



“부당해고”는 안 되고 “나쁜 해고”는 되나

노조원들은 부당해고라고 말하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부당해고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가처분에다 손해배상까지 감수해야 했으니 말이다. 해고가 법률적으로 유효라고 대법원이 판단했다고 해서 누구도 그에 반대되는 표현을 하지 못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법원이 법률적 평가 이외의 다른 판단기준과 가치에 대해서도 독점적 판단권한을 가지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노동자들에게는 해고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권리, 부당해고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사회는 참으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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