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표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현장)

1. 들어가기

근대 시민법의 원리에 대한 수정·보완으로 사용종속관계인 노동관계에서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징계할 수 없는 것이 노동법의 원칙이다. 이에 따라 사용자는 사전에 당사자에게 징계사유를 통보하고 징계절차를 거쳐 소명의 기회를 부여해야 하고, 적법한 징계사유에 대한 입증을 통해 징계권(양정)을 남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단결체인 노조의 내부통제권(징계권)도 이러한 법적 정당성을 갖추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노조의 내부통제권은 대상의 범위와 절차 및 징계 정도 등을 규약으로 정해 그에 따라 행사돼야 하지만 내부통제권도 규약이나 법의 일반원칙에 반해 반 집행부 세력이나 활동의 견제를 위한 악의적인 목적으로 활용하는 등 헌법이 보장한 노동기본권 행사의 목적과 취지에 반하는 내부통제권의 행사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2. 이번 사건의 개요

이번 사건은 택시회사 노조가 유인물 배포 등을 이유로 조합원을 제명했고, 해당 조합원이 제명처분에 대한 무효 확인을 구한 사건이다. 해당 조합원의 징계사유는 선거 공약과 달리 노조 집행부가 회사와 합의해 신차 출고를 이유로 사납금을 인상하자 이를 비판하며 유인물을 작성해 두 차례에 걸쳐 배포했다는 것이다. 사납금 인상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회사를 상대로 부가세환급금 및 상여금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과 사납금 인상에 대한 비판활동을 이유로 회사로부터 해고처분을 받은 조합원의 해고무효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모금을 요청하는 내용의 유인물이었다.


3. 이번 판결의 시사점

사실 이번 판결의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할 것이다. 거기에 한마디 덧붙인다면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단순히 절차 위반에 대한 판단뿐만 아니라 징계사유에 대한 판단과 심지어 (물론 가정을 전제하고 있지만) 징계양정 판단까지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재판부가 친절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심하게 말하면 징계를 거의 어용노조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내부통제권의 행사로 판단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먼저 징계절차와 관련해 노조 규약에 “징계기관은 징계결정 전에 당사자에 대해 소명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징계기관인 임시대의원회를 개최하면서 해당 조합원에게 그 개최 사실을 알리고 출석하라는 통지를 하지 않아 노조 규약을 위반한 절차상 하자가 있어 제명처분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징계사유와 관련해 ① 유인물 배포는 노조 규약의 징계사유인 조합의 지시사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② 조합원들에게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비용 등을 모금한 활동은 기부금품 모집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며 노조 규약에 위반된다고 볼 수도 없고 ③ 노조의 동의 없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노조 규약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고, 도리어 규약의 이 조항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을 침해해 무효이고 ④ 유인물 배포가 파벌을 조성하거나 조합원으로서 본분에 위배된 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해 결론적으로 해당 조합원에게 징계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가정적인 판단이지만 징계양정은 유인물의 내용과 표현정도, 그 배포 경위, 징계 전력 등의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제명처분이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4. 부언

노조 규약과 노조가 제시한 징계사유에는 “노조의 허가 없이 조합원들에게 불법유인물을 작성해 배포함”, “회사 내 종사원과 파벌조성 등 자생조직의 활동으로 근무태만, 근무질서의 문란을 야기해서는 아니 된다”, “조합원은 노동조합을 배제한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어떠한 법률적인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것들이 사용종속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는 취업규칙이라도 문제될 것인데, 어찌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단결체인 노조의 규약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노조의 단결력은 내부통제권의 행사 등의 강제적인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조합원의 참여와 민주적인 운영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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