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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꾼’서 건설노동자로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

이승현

공인노무사
(건설노조
법규차장)

몇 년 전 건설현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동네 용역업체 소개로 대기업 아파트 신축 건설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소위 ‘잡부’였다. 거기서 만난 나이 지긋한 한 건설노동자는 나를 보더니 “젊은 놈이 왜 여기 와서 이라노”라며 혀를 찼다. 씁쓸했다. 젊은 사람이 건설현장에서 일 하면 안 되는 법은 없건만 자신의 일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그래서 건설노동자가 아니라 ‘노가다’라 불리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건설현장은 무법천지라고 한다. 근로기준법도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도 건설산업기본법도 없다. 오로지 “빨리 빨리”를 외치며 법도 규정도 절차도 무시하는 건설자본들의 이윤추구와 탐욕만이 있을 뿐이다.

다단계하도급 구조 탓에 일명‘쓰메끼리’(유보임금)라는 이름으로 임금이 한두 달 늦게 나오고, 주휴나 연차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실제 일한 기간이 1년이 넘어도 일용직으로 4대 보험 신고가 돼 있다고 조기재취업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약과다. 나도 모르게 수시로 1년에 전출이 몇 번씩 이뤄지기도 한다. 불법하도급이 난무하고 돈 받고 튀는 놈들이 넘쳐나는데, 고용노동부와 원청·발주처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특히 건설현장에는 허울 좋은 사장님들이 넘쳐난다. 노동의 전 과정이 회사의 지배·관리 아래 있건만 강제로 떠맡은 차량 한 대 때문에 ‘사장님’이라 불리며 어떠한 노동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심각한 것은 산업안전 문제다. 해마다 국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이해 민주노총·민주노동당 등이 중심이 돼 선정하는 ‘최악의 살인기업’은 대부분 건설회사의 몫이다. 2011년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대우건설의 경우 지난해 한 해 동안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현대건설의 뒤를 이어 포스코건설에서 10명, 대우건설에서 9명, SK건설에서 8명, GS건설에서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특별상을 받은 4대강 공사현장은 2011년 1월부터 4월까지만 12명이 사망하는 죽음의 공사현장이었다.

문제는 산업재해 발생시에 가장 많은 무혐의 처분을 받은 건수 역시 현대건설이 15건으로 가장 많았고 대우건설(13건)과 GS건설·대림산업·삼성물산(각 12건)이 뒤를 이었다는 사실이다.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 있는 4대강 공사현장의 책임자라 할 국토해양부장관은 사과는 고사하고 “사고다운 사고는 몇 건 없고, 대부분이 본인 실수”라는 망언을 하고 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발생한 건설현장 사망자수는 노동부 통계로 총 635명이다. 그러나 이 통계에는 산재보험 급여를 받은 산재 사망자만 포함돼 있다. 실제로는 더 많은 산재사망이 발생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통계에는 산재보험 적용대상이 아닌 노동자의 산재사망, 사업주에 의해 은폐된 산재 사망자, 직업성 암·직업성 호흡기질환 같은 유해물질에 장기간 영향을 받아 사망한 산재 사망자가 포함되지 않는다.

소위 '골병'이라는 근골격계질환은 노동자 탓이라는 논리로, 산재처리 대신 법적 근거도 없는 공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산재보험도 아예 적용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건설현장은 장시간 노동·저임금·체불·산업재해 등 온통 부정적인 이미지를 덮어쓰고 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건설노동자들이 노조로 뭉쳐 단결하고 투쟁할 때 ‘노가다’를 버리고 건설노동자로 다시 태어난다. 알고 지내는 한 건설노동자는 왜 노조에 가입했느냐는 질문에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비록 작고 느린 진전이지만 오늘도 건설현장은 투쟁 속에서 바뀌어 나가고 있다. 모든 건설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그날이 멀지 않았다.

이승현  건설노조 법규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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