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미 기자

이길구 한국동서발전 사장의 연임이 사실상 확정됐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7일 “이길구 동서발전 사장과 장도수 남동발전 사장에 대해 업무의 전문성 및 사업의 계속성 등을 고려해 연임을 건의키로 방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추후 주주총회를 거친 후 대통령이 임명하면 연임 절차는 마무리된다.

문제는 지경부가 밝힌 연임 이유다. 지경부는 이 사장을 연임시키는 첫 번째 이유로 “취임 이후 공공기관 선진화 및 노사관계 안정화에 적극 부응하면서 경영성과 제고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수립·실천해 왔다”고 밝혔다. 동서발전을 ‘노사관계가 안정화된 사업장’으로 표현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올해 초 노동계에 ‘블랙리스트’ 논란을 불러온 '조합원 배·사과·토마토 분류 사건'은 민간 사업장이 아닌 공기업 동서발전에서 발생했다. 동서발전 일산열병합발전처에서 작성한 ‘발전노조 탈퇴 투표결과에 대한 원인과 대책’ 문건에서 이 회사는 발전노조 조합원들을 성향에 따라 배·사과·토마토로 분류했다. 투표 종료 후에는 조합원들의 성향을 정확하게 분석해 관리하겠다며 노무차장이 노조 선거관리위원들을 설득해 투표함 개봉을 시도하는 불법행위까지 저질렀다.

'발전노조 탈퇴를 통한 기업별노조 설립(Plan B)'이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동서발전이 복수노조 형태의 기업별노조 설립을 추진해 올해 3월까지 과반수 이상의 반민주노총 조합원을 확보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회사가 기업별노조 설립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길구 사장은 발전노조(민주노총) 탈퇴 투표가 부결되자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하는 공기업은 기관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며 "민주노총 탈퇴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무산된 점에 대한 실망이 크다"('사장님 말씀자료' 문건)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동서발전의 메일 서버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공기업 메일 서버를 압수수색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공기업 노사관계에서 이 정도의 물의를 일으켰다면 이 사장은 이미 사퇴했었어야 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연임을 결정했다.

결국 이 사장에 대한 연임은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기관장 평가에서 민주노조 말살에 높은 배점을 줘 노조를 와해시키도록 개입하고 있다”는 노동계의 의혹을 정부 스스로 입증한 셈이 됐다. 정부가 말하는 '공기업 노사관계 선진화'의 이면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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