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변호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 우리의 어머니가. 어째야 할까. 목 놓아 통곡해야 할까. 이 맑고 푸른 9월의 하늘 아래서 이 나라 노동자는 대성통곡해야 할까.

2. 전태일의 어머니였던 우리의 어머니. 이 자본의 세상에 대한 분노로 타 들어갔던 자식의 몸뚱이를 부둥켜안은 어머니는 십자가에 처형당한 자식의 몸뚱이를 부둥켜안은 마리아가 아니었다. 위대한 피에타도 아니었고 성스러운 성모자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 처절함을 아름다운 조각으로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자본과 권력에 노동자가 짓밟혀서 몸뚱이로 분노했던 인간 전태일의 어머니였다. 예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며 온 세상을 구하는 구세주, 신의 아들로서 분노 없이 죽었다지만 전태일은 이 세상에서 자본가와 권력자를 사랑할 수 없었고 그래서 오직 노동자를 구하기 위해서 그들에 대한 분노로 불타 죽었다. 그러니 마리아여. 당신이 우리의 어머니를 알까. 사랑도 없이, 명예도 없이, 이름도 없이 죽어 간 한 청년노동자의 주검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어머니여. 진정 당신이야 말로 우리의 어머니였다.

3. 열사. 이 나라에서 죽음으로 투쟁한 전사의 이름이다. 전태일. 그 하나로 이 나라 노동운동은 새롭게 시작될 수 있었다. 전태일의 나라는 자본과 권력, 학교와 교회까지 노동운동은 불온한 이름이라고 말했고 세상은 노동자를 배신하고 어떠한 신도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를 저주하지 않았다. 노동을 배신하는 자본의 고도성장이 구호였던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었던 이 나라에서 전태일의 이름으로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구호를 외칠 수 있게 됐다. 열사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노동자는 자신의 역사를 비로소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노동자는 전태일의 불타 버린 몸뚱이로 이 나라에서 투쟁의 이름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나라 노동운동은 되살아났다. 그래서 이제 누구나 전태일을 말한다. 심지어 전태일은 어린이전집의 위인이 됐다. 비겁한 자도, 기회주의자도 전태일 정신을 말하고, 권력자도, 심지어는 자본가조차도 전태일을 말한다.

4. 열사의 어머니는 아들의 뜻을 좇아 살았다. 아들의 뜻은 노동자를 위하는 것이었으므로 어머니는 열사의 어머니에서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았다. 그러나 아들의 뜻을 좇아가는 길은 아들을 죽인 형극의 길, 그 길을 가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노동자를 위하는 길은 이 세상의 지배자 자본과 권력에 맞서야 하는 투쟁의 길이었고, 어머니도 그 길을 걸어야 했다. 노동자의 어머니였던 우리의 어머니. 우리 시대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다 간 그 이의 이름이 이소선이다. 어머니로만 불렸던 이소선. 아들의 뜻이 그이의 뜻이 되고 아들의 못다한 삶까지 모두 짊어지고 살아내서 마침내 전태일과 함께 이 나라 노동운동의 영원한 이름이 됐다.

5. 그러나 나는 어머니를 모른다. 아들을 묻고서 아들의 나머지 삶을 살았던 한 어머니의 눈물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지금 나는 세 명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마리아, 콜비츠, 그리고 이소선. 신의 아들은 낳아 신의 아들로 부둥켜안고 살아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자본의 세상, 자본의 전쟁에서 노동자와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살아간 케테 콜비츠. 그리고 아들의 뜻을 좇아 아들의 나머지 생을 살아낸 이소선. 신이라 불리는 사내를 낳은 위대한 어머니 마리아와 자본의 세상에 맞서 노동자의 어머니로 스스로 살았던 콜비츠는 이스라엘의 종교운동과 독일의 노동운동이 낳은 어머니들이다. 어찌 어머니 이소선을 이들과 비기겠는가. 종교의 시대 그 종교의 어머니였고 그래서 온 세상의 어머니로 추앙받아 온 어머니와 노동자사상의 시대 그 사상을 그려내 노동자의 어머니로 섰던 어머니와는 우리의 어머니 이소선은 달랐다. 열사가 된 아들의 뜻에 따라 어머니는 노동자를 위해 살았고 그래서 종교도 사상도 아니고 그저 우리의 어머니로 살았다. 이 나라 노동자가 투쟁하는 현장에 달려가 어머니로서 함께했다. 투쟁하는 노동자의 종교가 무엇이든 사상이 무엇이든 우리의 어머니는 함께했다. 그것이 전태일의 뜻이었으므로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사력을 다해 투쟁하는 노동자와 함께하고자 했다. 성스럽지 않은 세속의 어머니였고, 과학적 사상을 모른 우리의 어머니 이소선이었다. 그래서 이소선은 열사의 어머니로서 끝까지 살아내 이 나라 노동자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 이 나라 노동자는 종교나 사상으로 서로 다른 꿈을 꿀 수도 없었으니.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고 지켜 내는 투쟁에서 종교·사상은 너무 멀리 위대한 것이었으므로.

6. 이제 묻어야 한다. 열사의 어머니, 노동자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를 묻어야 한다. 그러나 어머니 이소선을 묻는 것은 어머니의 시대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머니를 묻을 수 있는가. 어머니가 살아낸 전태일의 시대를 우리는 진정으로 묻을 수 있을까. 자본과 권력에 짓밟힌 노동자를 몸뚱이로 부둥켜안아야 했던 전태일의 시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어머니를 묻어야 하는가. 이제 9월7일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을 치른다. 전태일이 분노했던 시대, 어머니가 살아냈던 시대는 양적으로 확대됐을 뿐이고 전태일과 어머니가 꿈꿨던 세상은 오지 않았다. 노동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했다고 내세우고서 노동자를 기만하고 자본과 권력은 법의 이름으로 노동자를 짓밟고 있다. 노동기본권 행사는 여전히 제한과 금지의 법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힘은 더욱 더 강해져 가고 있다. 노동과 자본의 권리관계는 달라진 게 없고 단지 자본만 팽창했다. 그러니 70년대 전태일은 하나였지만 2000년대 수십 명의 전태일이 나와야 했다. 그런데도 지금 어머니를 조문하는 장례행렬이 꼬리를 물고 어머니를 추모하는 조사가 잇따르고 있다. 노동자냐 아니냐, 노동자편이냐 아니냐를 가리지 않고서 조문하고 추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는 만인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우리의 어머니는 투쟁하는 노동자의 어머니였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만인의 어머니는 노동자의 어머니가 아니다. 아무리 전태일 열사가 어린이전집의 위인이 됐다고 해도 전태일은 자본과 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이고 이 나라 노동자의 전태일인 것처럼. 이 나라 노동자는 어머니 장례식에서도 투쟁으로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런 게 이 나라 노동자인데 어찌 자신의 어머니를 만인의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어머니는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을 것인가. 어머니가 함께하고자 했던 사람이야말로 어머니의 추도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어머니가 함께하고자 했던 투쟁하는 노동자야말로 어머니를 진정으로 추도할 수 있는 자이다. 그리고 그의 투쟁에 의해서 전태일의 시대, 어머니의 시대를 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전태일이 불태웠던 노동법전을 묻고서 노동자세상은 오게 될 것이다.

7. 어머니 이소선. 이제 이 나라 노동자는 가슴에 묻어야 한다. 더 이상 전태일의 뜻을 따르는 것은 어머니 이소선의 몫이 아니고 이제 이 나라 노동자 모두의 몫이기에 이 나라 노동자는 어머니 이소선을 가슴에 묻어야 한다. 진정으로 가슴에 묻게 될지는 이 나라 노동운동이 말하게 될 것이다. 전태일과 어머니가 꿈꾼 노동자세상이 말할 것이다. 그날 해맑은 어머니의 웃음을 보게 될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