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변호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선거의 시대다. 지금 이 세상은 선거가 문제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선거와 관련해 금품을 건넸다는 검찰 수사로 문제되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후보단일화를 했던 상대였기 때문에 수억원을 주었다. 이 세상에서 선거는 이런 것이다. 수억원을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진보냐 보수냐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 노동법학자로서 이 나라 민주주의에 헌신해왔던 한 진보주의자가 금품을 건넬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선거다.

이 세상에서 선거는 권력자를 선출하는 행위다. 선거권자는 피선거권자 중 권력자를 선출한다. 그러니 선거는 권력이다. 선거가 권력이니까 수억원의 선거비용을 들여서라도 차지하려는 자리고,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은 당선에 사력을 다하는 것이다. 당선되면 만세를 부르고 당선되지 못하면 고개를 떨구고 낙담한다. 개인의 영예이고 가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출신학교의 자랑이라고 현수막이 걸린다. 대통령, 국회의원, 시·도지사, 교육감, 시군구청장, 시도의원, 시군구의원 등의 자리는 이 나라의 권력의 자리고 공직선거를 통해 그 권력자를 선출한다.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권력자가 되고 진보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권력자가 되지 않는 게 아니다. 이 세상은 권력자를 선출하겠다고 공직선거를 하는 것이고, 그 권력자가 되겠다고 후보가 되고 이걸 차지하겠다고 선거운동을 해서 당선되는 것이다. 그러니 진보주의자 아무개가 선거에 나선다면 그것은 권력자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고 당선된다면 권력자 아무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진보정당이 선거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이고 그 정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국가권력의 일부를 차지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2. 이런 것이다. 우리 세상에서 선거는 권력자를 선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에는 온갖 거래가 오고 간다. 무엇으로 거래할 만큼 그 자리가 값을 가지기 때문에 거래하는 것이다. 그 거래의 대상이 금품·권력자리·당직, 그 밖의 다른 것일 수 있다. 공직선거법이 금지한 것일 수 있고 금지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이 후보자 등 개인의 거래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정당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총선·대선 등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선거들을 한번 돌아보라. 거기에는 수많은 거래들이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비공식적으로 비공개적으로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공직선거에서 부정선거·부패선거의 방지를 위한 공직선거법 등 법령은 그 중 일부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정당에 거액의 재정적 기여를 하고서 그 정당의 당직자가 돼서 공직선거후보로 공천을 받은 자는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다. 여기서 재정적 기여를 다른 기여로 바꿔보자. 그러면 선거는 수많은 거래들로 이뤄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걸 확인하면 당신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선거는 거래다. 이 세상에서 선거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수많은 거래들로 채워져 있고 그 결과로 어떤 권력자가 탄생한다.

3. 이러한 세상에서, 이러한 선거에서 노동운동은 무엇을 할까. 지금 대선·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한다고 바쁘게 돌아가고 진보대통합이니 야권통합이니 야권연대니 시끄럽다. 이 나라 선거제도가 권력자 하나씩을 선출하니, 갈라져서는 승산이 없으니 통합과 연대가 지상과제가 됐다. 이 나라 노동운동은 이미 선거에 관여해 왔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해서 민주노동당을 만들었고 한국노총은 민주당·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해 왔다. 그런데 정치세력화와 정책연대는 선거에 조합원들을 동원함으로써 이 나라 권력자가 되겠다는 것이고 권력자와 연대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지후보의 당선을 위한 조합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지지후보가 당선되면 함께 만세를 불러주는 것이다. 지지후보가 당선되면 선거승리라며 열광할 것이고 조합원들에게 우리의 승리라고 열광할 것이다. 당선자가 기뻐 환호할 때 조합원들도 함께 환호할 것이고 후보자가 패배의 눈물을 흘릴 때 조합원들도 함께 낙담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이렇게 선거에 관여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노동자의 선거는 이런 것이라고 인식시킬 것이다. 지지후보에게 투표하고 지지후보가 권력자로 등극시키는 게 선거라고 노동자가 할 일이라고 각인될 것이다. 벌써 이렇게 인식되고 각인됐다. 그러니 선거를 앞두고 당선을 위해 통합하라, 연대하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러한 선거는 이 세상에서 권력자를 세우는 것이다. 그것에 지지를 보내고 권력자에 환호하는 것이다. 정당 소속이 어디든 권력자가 갖는 명령의 대상과 권한의 범위는 다르지 않다. 단지 그 명령과 권한을 그 권력자가 노동자를 위해 사용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권력자가 되는 순간 그는 지배자고 노동자는 그의 권력행사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는 그가 권력자로 선출된 국가권력기구의 규범을 준수하고 그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그게 그가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므로 이렇게 준수하고 수행해야 한다. 결국 노동자들이 지지를 보낸 권력자는 노동자들에게 명령하고 복종시킨다. 권력자를 노동자가 지지하는 후보로 교체하는 것이 선거였기 때문에 당연히 이렇다. 노동운동은 이전에는 자본의 탄압에 맞서 노동기본권,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법을 집행하는 권력자 사퇴 구호를 외치며 투쟁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법을 집행하는 권력자 만세를 부르며 투쟁해야 한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투쟁의 기치는 좌충우돌이고 노동자는 그 투쟁에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4.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이 말해온 정치세력화가 선거를 앞두고 그 당선을 위해서 말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기껏해야 노조간부 출신 아무개를 권력자로 출세시키는 것을 달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노동은 자본과 권력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획득해야 한다. 노동운동가 출신을 권력의 자리에 앉히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 자체를 변화시켜 내야 하는 것이다. 선거가 인민이 권력자를 선출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민의 대행자를 선임하는 행위가 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의 자리가 명령하는 자리가 아니라 명령을 받는 자리, 복종시키는 자리가 아니라 복종하는 자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노동운동은 전개돼야 한다. 이미 노동자는 압도적 다수다. 노동운동은 노동자세력이 아닌 다른 세력과 통합하고 연대하지 않더라도 노동자만 세워 내도 이 세상의 다수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에 대해 민주적 통제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노동자의 의지가 권력의 의지로 되는 것이다. 그러니 권력자에 독점된 권력을 민주적 통제 아래에 두기 위해 노동운동은 정치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 정치운동을 통해서만 노동운동은 국가권력의 독점을 국가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로, 나아가 권력 자체의 폐지로 이를 수 있는 전망을 갖게 될 수 있다. 권력에 대한 철저한 민주주의의 실현은 권력의 해체 내지 폐지를 가져온다. 이 세상에서 정치세력화를 위한 노동운동의 역사는 이미 100년이 넘었다. 수많은 권력의 자리에 노동자정당의 후보를 당선시켰고 수많은 권력자가 그 권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그 권력자는 그 국가권력기구의 규범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 국가권력 자체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선거는 권력자를 선출하는 것이지 권력의 행사의 민주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대표를 권력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노동자대표를 권력자로 세우기 위한 역사가 되고 말았다. 노동자대표가 당선돼서 권력을 행사했는데도 노동자가 여전히 자본의 전횡에 시달리고 권력행사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상태라면 이제 노동운동은 다시 자신을 살펴봐야 한다. 노동운동이 노동자에 대한 권력으로서 기능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만약 노동자에 대한 권력이 지금 이 세상 노동운동의 적나라한 실체라면 그 노동운동은 노동자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선거의 시대에서 선거가 권력인 세상에서 노동운동은 권력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을 가는 과정에서 선거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통합과 연대를 물어야 한다. 지금 선거는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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