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고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사회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여성 건강권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나 산업현장의 노동방식이나 생산공정은 여전히 남성중심으로 편제돼 있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생리적 구조가 다른데도 이러한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채 건강·안전대책이 수립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혜선 가톨릭대 의과대학 보건대학원 교수(한국산업간호학회장)는 28일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악한 고용구조와 신체구조를 갖고 있는 만큼 고용형태별·생애주기별 안전대책을 별도로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복임 울산대 간호학과 교수는 모성보호와 관련해 "새롭게 제도를 갖추는 것보다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이달 발간한 '안전보건 연구동향'에서 이러한 내용의 '여성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를 상세하게 다뤘다.

날로 증가하는 여성노동자

우리나라 15~64세 여성의 연도별 경제활동참가율은 80년 42.8%에서 2000년 48.3%·2010년 49.4%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여성의 고용형태가 남성에 비해 열악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010년 기준 남녀 취업현황을 고용형태별로 살펴보면 남성의 66.7%가 상용직인 반면 여성은 43.9%에 불과했다. 특히 여성은 임시직 43.3%·일용직이 13.1%로, 불안정 고용에 놓인 취업자가 전체 취업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또 2009년 기준으로 여성의 43.0%가 3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업종별로는 47.7%가 '부동산 및 공공·개인·사회 서비스'에, 25.4%가 '도·소매 및 숙박·음식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여성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했다가 결혼·임신·출산·육아 등에 따라 직장을 그만두면서 30대에 여성 경제활동이 급격히 줄어드는 'M자형' 취업곡선이 나타나고 있다.
정혜선 교수는 "소규모 사업장 및 서비스업종은 산업안전보건 정책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됐고, 비정규직의 경우도 기업 차원에서 제공하는 체계적인 안전보건 서비스를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산업보건관리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여성이 많은 만큼 취업 특성을 고려한 여성 노동자의 건강관리방안을 모색하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도 지난해 3월 밝힌 '제3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에서 "저숙련·고위험 업종에 근무하고 이직이 잦은 고령자·여성·외국인 등 취약계층근로자 재해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정부의 관심과 투자는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또 "여성근로자 안전보건 대책으로 주요 취업 작업의 안전보건 매뉴얼과 고객 상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 대한 건강증진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1년 1만1천639명이었던 여성 재해자수는 2009년에는 1만9천466명으로 늘었다.<표 참조>
산업재해자 중 성별 점유율을 살펴봐도, 2000년에는 남성 점유율이 86.9%(여성 13.1%)로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2009년에는 남성이 80.1%로 줄었고 여성은 19.9%까지 늘어난 상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여성은 특히 남성과는 다른 신체적·생리적 구조·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산업체계가 남성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사업장(공장) 내 작업공정과 기계의 구조 등은 남성 중심으로 편재돼 있다.
정혜선 교수는 "평균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키는 약 10센티미터 작고, 체중은 5킬로미터 적은 것을 물론 다리는 짧고 골반이 커서 신체 중심이 남성보다 아래 있어 활발한 움직임에 불리하다"며 "이러한 여성의 신체적·생리적 특징을 업무와 산업안전 대책에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오랫동안 서 있는 일을 반복하면 생리불순은 물론 심하게는 내장하수나 자궁하수 등의 질환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는 이에 따라 "생애주기별로 각각 다른 여성 건강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출산·양육기인 20~40세 기혼 여성은 다른 나이대에 비해 전반적으로 건강이 좋은 시기이기는 하나 가사노동과 직장생활의 병행으로 개인 건강관리를 위해 노력하거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나 사회가 임신·출산·양육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지원함을 물론 알맞은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첫 단추로 제시했다.
또 50~55세 중년기 여성은 폐경에 따른 골다공증·근골격계·심혈관계질환 등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면서 정서적인 변화도 일어난다. 영세 소규모 사업장이나 제조업·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중년 여성은 심한 육체노동을 요구하는 작업에 저임금을 받으면서 고용돼 있는 경우가 많아 건강관리에 필요성이 더욱 크다. 55세 이상의 노년기 여성은 이러한 증상이 더 심해진다.
정혜선 교수는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생리적 특성이 다르고 고용노동환경에서도 성별 차이가 나고 있는 만큼 성인지적 관점에서 여성 근로자의 건강관리를 사회적으로 책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문제를 성별 차이 없이 같은 잣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상대적 평등 법리에 따라 남녀의 신체·고용·노동환경 특징에 맞는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는 우수, 사회적 인식은?

이복임 울산대 간호학과 교수는 "전체 취업 여성 근로자 중 40% 정도가 25세 이상 35세 미만의 가임기 연령대에 있는 만큼 이들의 모성보호 대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여성 근로자의 열악하고 불안정한 고용환경은 여성 자신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의 노동인력을 재생산하는 모성기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모성보호란 여성의 생리·임신·출산·수유·육아 등의 모성기능에 관한 보호를 뜻한다. 여성 자신뿐만 아니라 영·유아를 모두 보호함으로써 현재와 다음 세대의 보다 건강하고 창의적인 노동력을 확보해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정부 역시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의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서 △생리 휴가 △산·전후 휴가 △유·사산 휴가 △임산부의 근로 금지·제한 등의 제도를 도입·강화했다.
매년 이러한 제도를 이용하는 여성 노동자가 늘고 있지만 아직은 저조한 형편이다. 예컨대 직장을 다니다 아이를 낳은 전체 여성 노동자 중 산·전후 휴가 급여를 수급한 노동자는 2009년 기준 34.5%에 불과하다.
이 교수는 "산·전후 휴가 제도의 활동도가 낮은 것은 여성 근로자의 낮은 고용보험 피보험률(49.1%)과 제한적 고용보험 급여 지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며 "여성 근로자의 상당수가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어 고용이 불안하기 때문에 산·전후 휴가를 사용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2008년 산·전후 휴가 급여 수급자 6만8천526명 중 정규직은 4만1천857명에 달했으나 비정규직은 2만6천669명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육아휴직 역시 전체 사업장의 89.4%인 대다수가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곳은 65.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교수는 "비록 모성기능은 여성 담당일지라도 모성보호가 차세대 노동인구의 건강과 직결된다는 관점에서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과제임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모성보호 제도는 우수한 편이지만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만큼 사회적 인식 전환과 제도 작동을 위한 비용의 사회화·사용자(혹은 사업체) 처벌 강화 등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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