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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투표 이후

김민웅

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대학원교수

오세훈은 지금 인생무상일 거다. 무상이 이럴 때 쓰는 말일 줄 몰랐겠지. 한나라당은 앞이 캄캄할 거구. 사퇴시점을 놓고 어떻게 꼼수를 부리나, 그거 생각하느라고 머리통이 터질지도 모른다. 홍준표는 “사실상” 승리라면서 사실관계를 비틀고 있다. 아무리 그래 봐야 한나라당으로서는 사실상 내년 수도권 선거 물 건너갔다.

이제 야권도 계산에 바쁘다. 야권연대나 통합을 서로 저울질하면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논란을 벌일 것이다. 일단 복지정책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마음은 결정됐다. 무상급식 문제는 이제 반값 등록금과 연결되고, 무상의료 정책으로 진화하고 좀 더 진일보한 복지국가로 완결돼 가는 경로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내년 4월이 지나면 “사실상” 종료된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예산을 이토록 낭비해 버린 정권으로 말미암아 정작 국민들을 위해 쓸 돈은 없을 것이니까. 주민투표만 해도 개봉도 못한 채 182억원이 날아가는 짓을 벌였다.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이다.

결국 심판해야 한다.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정치적 청산의 과정을 철저하게 밟지 않으면 이 나라의 미래는 또다시 어려워진다. 바퀴벌레나 쥐같이 어두컴컴한 구석에 숨어 있다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세력들로 인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정말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를 좌절시킨 것은 그런 점에서 발군의 성과다.

나쁜 투표는 거부하고 좋은 투표는 적극 나선다, 이런 주장도 힘을 얻어 하나의 정치적 일상이 됐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법이다. 투표독려가 법망에 걸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투표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각자의 권리행사에 달려 있다. 대형 보수교회가 주민투표 독려를 한 것을 놓고 시비를 걸 일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원하는 투표를 독려할 때 부메랑을 맞는다.

중요한 것은 특정 투표에 대한 입장 설정을 보다 명확하게 하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걸로 승부를 봐야 한다. 가령 이번 주민투표는 무상급식 찬반 여부가 아니라, 오세훈에 대한 심판적 성격의 투표라는 점을 강조하면 된다. 무상급식 논란에 말려들지 않아도 된다. 투표독려는 무상급식과는 하등 상관없는 오세훈 살리기고, 투표거부는 지금까지 서울시정을 마구잡이 과시행정으로 일관해 온 그를 추방시키는 선택이라고 알리면 된다.

기묘하게도 이번 주민투표 결과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4월 총선, 그 이후 대선에 이르는 길을 시원하게 뚫어 준 격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역사의 은총이다. 문제는 이제 골문 앞 처리다. 우리 축구가 이게 약한 것처럼, 진보정치도 이 점에 약하다. 공수의 전략은 나름 잘 짜면서 막상 필드에서는 서투르다. 골문 앞에서도 엉거주춤이다. 실전부족에 기량의 섬세함 부재다.

승패는 골을 넣는가 아닌가로 판정된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골인을 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힘만 빠질 뿐이다. 정확히 패스하고 정확히 골을 넣어야 한다. 이게 혼자서는 안 된다. 팀워크를 짜고 훈련을 해야 하며, 감독과 코치가 좋아야 한다. 이게 진보대통합과 야권연대의 틀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진보정치의 무대는 좁아지거나 사라질 수 있다. 무대 없는 공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는 미적거릴 일이 아니다. 시간도 많지 않다. 지리멸렬의 진보정치는 결별해야 한다. 대중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뭐든 마다하지 않고 해야 한다. 몸을 키우는 것도 실력이다. 몸이 왜소하면 권력을 잡을 수 없다. 숫자가 모자란데 거기에 국민들이 표를 기꺼이 주지 않는다. "진보세력 키워 주세요"의 단계는 이미 지났다.

주민투표 이후의 성과를 잘 지켜 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니면 이것도 금세 까먹는다. 이미 몇 번 경험했던 바가 아닌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진보대통합은 시한대로 밀고 나가고, 여의치 않으면 함께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하고 일단 발을 떼야 한다.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 가다가 나중에 합류하겠다고 하면 그때 가서 그렇게 하면 된다.

진보대통합 합의문대로 지켜 나가서 모을 수 있는 세력을 모두 모아, 그 안에서 새로운 진보정치를 탄생시키면 된다. 어차피 각자 가지고 있는 진보성이 다르고, 그게 독자성을 가지고 새로운 진보정당 안에서 중심을 잡는 게 아니라 서로 섞이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자고 했으니 다양성과 개방성, 그리고 이 모두의 융합을 이뤄 내면 진보정치는 새로워질 수 있다. 역사가 내린 축복을 발로 걷어차는 어리석음은 더는 보이지 말아야 한다.

김민웅  globaliz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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