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28명의 공인노무사들은 ‘가진 자의 이익을 지키는 법률 전문가가 아닌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로서 살아가겠다’는 신념을 갖고 모임을 결성했다. 그렇게 지난 7년간 부당한 법·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노동자와 함께해 온 ‘길 위의 노무사’들이 최근 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이 쓰고 <매일노동뉴스>가 펴낸 '노동조합을 위한 복수노조 제도 해설'(315쪽·1만5천원)<사진>이 그것이다.

복수노조 쟁점이 한 권의 책 속으로

이 책은 복수노조 제도의 법적 쟁점부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실제 적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무상의 주요 쟁점과 대응방안을 폭넓게 담고 있다. 저자들은 “제1장에 압축해 놓은 법적 쟁점만 봐도 노조 활동가들이 현행법의 핵심적인 문제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노조 설립부터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 단체교섭과 쟁의행위·부당노동행위에 이르기까지 복수노조 제도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노조 운영상의 모든 문제와 해법도 수록돼 있다. 쟁점을 다루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예컨대 저자들은 “모든 노조가 스스로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차선으로 연대에 의한 자율적 교섭대표노조, 위임·연합의 과반수 교섭대표노조, 단체교섭 및 체결권한의 위임을 통해 사실상 자율교섭에 준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다수의 정규직노조와 소수의 비정규직노조가 공존할 때 과반수인 정규직노조가 교섭을 진행하면서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보호에 관한 사항은 비정규직노조에 위임하는 형태로 사실상의 자율교섭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조합원의 가입원서를 만들 때 노조의 취지와 규약에 찬성한다거나 노조의 결의 및 지시사항을 준수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게 좋다는 훈수도 둔다.
새로운 아이디어들도 톡톡 튄다. 이를테면 과반수 교섭대표노조가 단체협약 요구안을 정할 때 다른 노조의 요구안까지 반영하기 위해 ‘개방형 선호투표제도(소속 노조나 개인 신상 정보를 최소화하면서 교섭안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하는 방식)’ 도입을 권고하기도 했다.

노조는 무엇을 위해 경쟁하는가

노노모가 이 책을 내놓은 목적은 사실 ‘참고자료’ 편에 나온다. ‘교섭단위 내 노조 간 공동합의서’라는 이름으로 담긴 일종의 복수노조 사이의 신사협정 예시문이다. 복수노조는 필연적으로 노조 간 갈등을 유발한다. 현행 노조법은 노조 사이의 경쟁력을 조합원수로만 판정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 간 ‘조합원 빼내기 경쟁’은 불 보듯 뻔하다. 저자들은 “노조 간 경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기 전에 노조들이 견지해야 할 대원칙, 연대와 단결의 원칙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합원 늘리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비열한 조직화 방식을 제지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5장은 이런 목적으로 쓰여졌다. 우리나라에 앞서 복수노조를 시행한 미국·영국·일본에서 조직 간 침탈행위(조합원 빼내기)를 막고 내부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는지 살피고, 한국의 노사관계 지형에 적합한 규율은 무엇이 있는지 참 꼼꼼히도 적었다.

총연맹 간 불가침협정을 체결한다든지, 상급단체별 갈등조정시스템을 마련하고 미국 AFL-CIO가 도입하고 있는 공정중재인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끝으로 교섭·쟁의행위시 공통의 비용부담 방안부터 이면합의 공개에 관한 사항까지 사업장 복수노조 사이에 발생하는 쟁점을 뽑아, ‘교섭단위 노조 간 기본협정’으로 정리한 부분만 봐도 이 책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아쉬운 점은 노조를 위해 쓰여진 실무서임에도 불구하고 노조법과 노사관계 이론·실무에 모두 밝지 않으면 딱딱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올해 7월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은 부쩍 바빠졌다. 법 해석에 대한 논란도 있거니와 실무적으로도 노조에 생기는 변화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노모는 노조설립부터 쟁의행위·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대응방안을 정리하고, 복수노조 시대에 노조가 반드시 견지해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도 찾아야 했다.
올해 초부터 일부 회원들의 제기로 '노동조합을 위한 복수노조 제도 해설'이 기획됐다. 집필은 최근 두 달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김철희(법률사무소 참터)·구동훈(노무법인 현장)·김혜선(여는합동법률사무소)·장영석(전국대학노조 상근 노무사)·배현의(민주노총 서울본부 법률지원센터) 회원이 저자로 참여했다. 이어 6월에 열린 노노모 워크숍에서 전체 회원 간 토론을 거쳐 원고가 완성됐다. <매일노동뉴스>가 앞서 펴낸 '복수노조 100문100답'과 함께 보면 더욱 좋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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