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교육 실시나 안전장치 설치 등 법은 다 준수해요. 하지만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반도체 작업 특성상 유해성 정보에 대한 노사의 긴밀한 소통이 계속 필요해요. 근데 삼성은 그게 잘 안 돼요.”

지난 17일 '삼성반도체 근로자 보건관리 강화' 대책을 발표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발표 내용 중) 핵심이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에 기자들이 ‘노조가 없어 그런 것 아니냐’고 묻자, 노동부 관계자는 “산업의학전문의를 확보하도록 권유하겠다”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 관계자는 "근로자와 유해성 정보에 대해 소통하는 기술을 능력의 중요한 잣대로 평가하는 산업의학전문의를 확보하면 소통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산업의학전문의가 있는 곳은 현대·기아자동차와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이에 기자들이 "결국 강성노조가 있는 곳에 산업전문의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자, 그는 "노조가 있으면 산업안전에 도움이 많이 되긴 한다"며 말끝을 흐렸다.

노동부는 이날 삼성전자에 보건관리 강화를 주문했다. 고 황유미씨가 삼성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지 4년5개월 만이다. 이어 모니터링팀이 보건계획 실행 여부를 감독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그러나 이번 대책의 당사자인 피해노동자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시민단체에게는 관련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소통 부재를 지적한 노동부가 삼성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셈이다.

노동부는 2008년 근로복지공단과 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을 통해 실시한 삼성전자 역학조사에도 노동자의 참여를 배제했다. 당시 예상대로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시민단체들이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삼성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은 제3의 기관인 인바이런사에게 역학조사를 의뢰해 지난달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방법과 데이터는 비밀이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인바이런사의 역학조사 발표장에서 ‘증거를 보여 달라’는 기자들의 질타에 "제3의 기관의 조사 결과도 안 믿으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이날 ‘대책의 실효성이 없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삼성이 노동부의 권고를 지키지 않을 것에 대해 묻기보다 삼성이 권고를 지켰을 때의 효과를 생각해 달라”며 “도대체 노동부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답은 간단하다.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피해를 당한 사람이다. 피해자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들의 증언을 검증할 수 있는 공식적인 논의틀을 만들면 된다. 노동부가 삼성백혈병 사태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모니터링팀에 당사자인 피해노동자들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들의 참여가 전제되지 않는 한 노동부의 모니터링은 또 다른 논란만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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