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월스트리트가 공포에 사로잡혔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S&P)사가 지난 5일 미 채권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그러자 지난주 초 다우존스지수는 사상 9번째의 낙폭을 기록하면서 폭락했다. 세계 주요 나라들의 증시도 폭락했다. 한국 증시도 기록적으로 폭락했다.
 
미국의 한 신용평가회사의 발표에 미국과 세계, 그리고 한국 증권시장은 요동쳤다. 미국정부는 이 신용평가회사를 비난했다. 그러나 이 신용평가회사의 미 신용등급 하락 발표는 검은 월요일, 증시 폭락의 촉매가 된 것뿐이다.
 
이미 미국경제의 침체와 유럽을 위협하는 채무위기의 확산,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같은 세계경제의 위기는 증권·채권·현물 등 각종 거래시장의 투자자들, 돈놀이꾼들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다.
 
그러니 한 신용평가회사의 미국 채권 신용등급 강등소식에 월스트리트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세계 증권시장도 공포에 휩싸였던 것이다. 공포는 폭락이 됐다. 공포는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제로금리를 2년 연장하는 등 각국 정부의 조치에 의해 진정됐고, 증시 폭락은 멈췄다. 이렇게 공포의 날은 다시 지나갔다. 이번 공포는 곧바로 공황이 되지 않았다. 공포는 지속되지 않았고 대공황의 날은 오지 않았다. 공포의 실체, 세계 경제위기는 변함이 없는데 공포는 일단 진정됐다.

이렇게 공포가 다가왔고 다시 공포가 지나갔다. 공포의 날에도 노동자는 여전히 일하고 살았다. 노동자에게 공포의 날은 무엇일까.

2. 이번 공포는 자본의 시장에서 발생했다. 이 세상에서 상품, 노동뿐 아니라 자본 자체도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된다. 자본의 거래시장이 주식시장, 즉 증시다. 증권시장은 자본의 거래시장이니 그건 자본가들 사이의 일이고 노동자는 뭐 그런 게 있나 하면 그만일 수 있다. 이 시장은 자본의 회사에 대한 지배력, 즉 회사에 대한 지분소유권이 주식이고 이 주식이 거래되는 시장이다.
 
회사는 설비 등 고정자산, 노동자 등 유동자산으로 구성돼 있다. 노동자에 대한 지배력도 당연히 주식이라는 권리증서에 반영돼 있는 것이다. 결국 주식시장, 즉 증시에서 주식이 거래되면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권리도 거래되는 것이다. 어느 날 그 가격이 곤두박질쳐 주식이 휴지가 된다면. 자본의 소유자는 재산상의 손해가 막심할 것이니 겁을 집어먹고 공포의 날이라고 비명을 지를 것이다. 주식의 소유자가 아닌 노동자에게 이 날은 공포의 날일 수 없다.

노동자의 고용·임금·물가 어디에도 공포가 영향을 주지 않고 지나갔다면 공포는 노동자에게 공포가 아니다. 그런데도 증시가 공포에 떨자 노동자는 겁을 집어먹고 함께 공포에 휩싸인다. 증시의 공포는 자본의 공포다. 그건 세상의 공포가 된다. 왜 그럴까. 이 세상은 자본주의 세상이고 세상에 대한 권리는 자본의 것인데 그게 지금은 주식증서다. 그러니 세상에 대한 자본의 권리의 가치가 추락하는 것이 증시 폭락이다.
 
이 세상의 주인인 자본가에게 증시 폭락이 공포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세상의 주인이 공포에 휩싸이니 이 세상은 공포에 휩싸이는 것이다. 이 세상의 처분권자는 자본(가)이고 자본(가)의 처분에 의해 이 세상은 운영되고 있다. 그 자본(가)이 자신의 재산 가치가 폭락해서 겁을 집어먹었으니 자신에게 귀속돼 있는 세상에 대한 권리를 다시 세상의 생산에 투입할 의지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자본의 공포가 세상의 공포가 되는 것이고, 덩달아 노동자의 공포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공포, 자본의 공포가 된 증시의 폭락은 자본의 거래시장에서 그 거래의 주체들, 즉 자본가들이 자본시장에서 거래되는 개별 자본들의 가치를 대폭 낮춰 평가하는 것이다. 자본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폭락시키는 것, 그것이 증시 폭락이다. 개별 자본의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가 결국 자본 일반에 대한 평가절하로 나타난 것이 증시 폭락이다. 개별자본에 대한 불신을 통해 자본 일반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것이 증시 폭락이다.
 
증시 폭락은 결국 자본가의 자본거래시장에 대한 불신인 것이다. 그것뿐일까. 자본거래시장, 즉 증시는 회사에 대한 권리지분인데 이건 결국 현물에 대한 권리지분인 것이고 따라서 증시에 대한 불신은 결국 자본거래시장에 대한 불신을 넘어 자본주의 시장거래에 대한 불신이 된다. 이번 공포의 날도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에서 비롯됐다.
 
세계경제에 대한 자본의 불신이 이번 증시 폭락으로 나타났다. 만약 공포의 날이 계속돼서 대공황의 시대가 온다면 대공황은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대한 자본의 불신인 것이다. 그래서 공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자본의 불신인 것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주인은 자본가라고 자본주의 법질서가 선언하고 보장해 줬던 것이니 결국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대한 자본가의 배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자본가의 불신과 배신이 자본의 공포가 돼서 결국 노동의 공포가 된다.

3. 자, 그러면 어찌 되는가. 자본가가 배신했으니 ‘이 세상’은 ‘저 세상’이 될 것인가. 노동자는 이 세상에서 자본에 복종하는데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며 만세를 불러야 할까. 공포 만세, 공황 만만세. 이렇게.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대해 불신과 배신을 하는 자본가는 자본주의 세상을 배신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주인을 자본가라고 선언하고 보장한 이 세상의 법질서를 배신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저 세상이 될 수가 없다. 여전히 자본가는 이 세상의 주인이고 권리자다.
 
이 세상의 소유자·권리자는 여전히 자본가이고 그의 처분에 따라 이 세상은 작동한다. 증시 폭락, 공황은 시장에 대한 자본의 불신이지 자본에 대한 불신이 아니다. 노동자는 공황이 자본에 대한 세상의 불신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 없이 세상이 불신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노동자를 위해 세상이 자본에 대해 하는 불신은 아니다.
 
공황은 자본주의 시장질서가 고장 난 것이고 그러니 당연히 이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가 올 것이라고 노동자는 착각해서는 안 된다. 공황은 자본주의 시장질서의 순환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 순환은 자본의 개별자본에 대한 평가절하에서 자본에 의해서 초래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고장 난 것이라고 해도 새로운 질서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당연하게 오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경제질서가 고장 났을 때 새로운 질서를 세울 힘이 있는 계급·세력에 의해 새로운 질서는 세워졌다. 새로운 질서의 내용과 권리관계는 그 계급·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해졌다. 공황으로 기존 자본주의시장질서가 문제가 발생했다 해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한다면 누가 새로운 질서를 세울 것인가. 답은 뻔하다. 힘을 갖고 있는 계급·세력이다. 만약 노동자가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한다면, 즉 새로운 세상을 노동자의 내용과 권리관계로 세우고자 한다면 노동자계급은 힘을 갖고 있는 계급이 돼야 한다.
 
아무것도 경제적으로 법칙적으로 세상의 주인을 결정하지 않는다. 설사 세상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발전할 때에도 누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주인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을 둘러싸고 투쟁했었다. 어느 사회가 경제적으로 자연법칙적으로 발전했다면 그건 기존 질서의 지배자가 어떠한 이유로든 힘을 잃게 됐고, 그때 힘을 갖춘 계급·세력이 자신의 질서를 자연스럽게 구축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래는 필요에 의해 이뤄지지만 권리는 이해가 대립한다. 노동자권리는 경제적으로 법칙적으로 당연하게 획득될 수가 없다. 노동자권리는 노동자계급의 힘에 의해 그 내용과 크기가 결정된다.

4. 이번 공포는 자본의 공포다. 세계경제에서 자본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 내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공포는 다소 진정됐지만 경제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 위기가 계속되는 한 공포의 날은 조만간 다시 올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공포는 자본의 공포다.
 
그러나 자본의 공포에서 세상의 공포로, 나아가 노동의 공포로 전개될 수 있다. 고용·임금·물가 등을 통해 노동자에게 공포는 전가된다. 지금까지 공포, 나아가 공황의 시기에 그래 왔던 것처럼 자본에 의해 개별적으로, 국가에 의해 전체적으로 노동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해고와 실업, 임금삭감, 물가상승 등을 통해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게 당연한 경제위기의 대응책이었다.
 
이렇게 자본의 공포가 노동의 공포로 바뀐다. 그래서 노동자는 공포의 날에 자본과 함께 겁을 집어먹고 떠는 것이다. 공포가 아닌 경제순환기에서도 자본의 위기는 노동의 위기로 전가돼 왔다. 노동자가 자본의 공포, 위기를 전가받는 한 노동자는 이 세상에서 획득한 자신의 권리를 삭감당하는 것이다. 노동자세상은 자본의 공포, 위기를 더 이상 전가받을 수 없다는 권리선언으로부터 시작되고 이를 위한 노동자의 투쟁으로 쟁취될 수 있는 것이다.
 
공포의 날이 노동자에게는 노동자의 권리선언의 날일 때 노동자는 자신의 질서를 세상의 질서로 세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는 권리를 분명히 알고 확보해 나가야 한다. 공포의 날에도 빼앗기지 않고 쟁취해야 할 권리목록을 세워 나가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