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5당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해결에 나서기로 했다. 야5당 대표들은 지난 3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청문회를 재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야권이 함께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3차에 걸친 희망버스를 통해 한진중 사태는 부산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 현안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여전히 떨떠름한 반응이다. “노사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지 외부세력이 개입하는 것은 사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며 종전의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단, 사태를 방치하고 50여일이나 나라 밖에서 머물고 있는 조남호 회장의 귀국에는 동조하는 모양새다.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도 “당당하게 귀국하시라”고 격려할 정도다. 그러나 여당은 조 회장을 국회 청문회장에 세우는 일에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다.

‘외부세력’ 논란부터 짚어 보자.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사가 합의했는데도 밖에서 정치·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 왔다. 한나라당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에 따르면 희망버스에 오른 노동자·시민·야당 국회의원은 외부세력이다. 이른바 노사자율 해결을 가로막는 ‘훼방꾼’이다. 한진중 노사가 지난 6월27일 체결한 ‘노사협의이행합의서’를 근거로 내세운다. 여기에는 정리해고자의 희망퇴직 보장, 형사 고소·고발과 진정건 노사 쌍방 취하 등이 명시돼 있다.

그런데 이 합의는 말 그대로 ‘노사협의문’에 불과하다. 한진중지회는 금속노조 소속이기 때문에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단체협약 체결권을 가지고 있다. 금속노조 규약에는 단체협약 사항은 위원장 동의 없이 개별 사업장 노사협의회의 안건으로 다룰 수 없도록 돼 있다. 정리해고 등 고용 문제는 노사협의가 아니라 단체협약에 의해 규정될 사안이다. 때문에 한진중지회장과 한진중 조선부문 대표가 서명한 합의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이런 사정으로 합의서에 정리해고 문제를 추후 협의하기로 명시한 것이다.

한진중지회는 이 합의 후 정리해고 문제를 임금·단체협약 갱신협상의 의제로 포함시키자고 요구했다. 단체교섭에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도 참석하는 것을 제안했다. 반면 회사측은 정리해고 문제는 노사협의로 하되 금속노조 위원장의 참석을 거부했다.

한진중지회 조합원들의 결정으로 가입한 산별노조의 교섭권조차 거부하는 것이 노사자율은 아닐 것이다. 회사측은 겉으로만 외치고 있을 뿐 실질적인 노사자율 해결을 봉쇄하고 있다. 진정으로 노사자율 해결을 원한다면 단체교섭 체결권을 가진 금속노조와 한진중지회의 요구를 존중하는 게 옳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노사자율에 의한 해결방식이다. 그런데도 평소에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이채필 장관이 이런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 외부세력 운운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법적 상식에도 맞지 않아 볼썽사납다. 고용노동부는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교섭참여를 보장해 주고, 정리해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진중 정리해고 사태는 한 사업장만의 문제로 축소돼선 안 된다. 수년 전부터 조선산업의 불황과 구조조정은 예고돼 왔다. 조선사들은 사업장 해외이전을 탈출구로 삼았고, 그 결과 한진중 정리해고 사태가 빚어졌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조선산업의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논의해야 할 이유다. 때문에 야권이 한진중 정리해고 사태에 개입하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다. 사태해결을 꼬이게 하는 외부세력의 개입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회 차원에서 입법적 해결책을 논의하고, 조선산업 노사와 정부 차원의 대화기구를 구성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조남호 회장 청문회는 사태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여당은 청문회를 막무가내로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6일이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77일간 점거농성 끝에 노사합의를 한 지 2년째가 된다. 그동안 노동자와 가족 1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리해고의 악몽은 쌍용차 노동자에게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평택시 고용촉진지구 지정, 자치단체·노동부의 재취업지원과 무급휴직 후 직장복귀 등 여러 대안이 시행됐지만 실효성은 없었다. 희망퇴직자와 해고자 대부분은 실직상태이거나 비정규직으로 전락했고, 생계곤란을 겪고 있는 무급휴직자들은 아직도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실직 후 원활한 재취업과 사회보장이 전제돼 있지 않는 우리 사회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정리해고는 말 그대로 ‘살처분’이었다. 더 이상 야만의 세월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한진중 사태해결은 말만 그럴듯한 대안이 아니라 근본을 치유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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