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 조 회장, 빨리 귀국 않고 뭘 꾸물거리는가.” 지난 3일자 조선일보 사설 제목이다. “희망버스 세 번이면 충분 … 조남호 나와라” 지난 1일자 중앙일보 6면 희망버스 관련기사 제목이다.

3차 희망버스의 최대 성과는 조·중·동조차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모든 보수가 이상한 기업주 하나가 자칫 재벌 천지의 대한민국을 한꺼번에 침몰시킬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진화하는 버스를 배차했던 사람들 이야기다. 하루 먼저 내려와 어렵사리 배차실을 구한 사람들은 역할을 분담하고 영도를 돌았다.

지난달 30일 아침 경찰은 희망버스 기획단에 영도 진입은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전날 우리가 월담의 우려가 덜하고, 주민피해와 교통흐름도 방해하지 않을 장소를 내 달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서울의 높은 양반이 강경하게 '영도진입 불가' 하란다. 조·중·동도 다 아는 한진중 해법을 서울의 높은 양반만 몰랐다.

30일 낮부터 배차실은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전국에서 출발시간을 알려 왔다. 긴박했던 그날 오후 “150원밖에 없어? 그럼 저금통 깨서 뭘 좀 먹어” 배차실장은 그렇게 아들과 통화했다. 실장은 이날 오후 2시와 6시 기자회견을 잡아 놓고 10분 만에 회견문을 작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85크레인 앞 종교행사와 청학동 사전진행을 맡은 동지는 8시간 동안 혼자 사회를 봐야 했다. 짜증을 내면서도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우리가 날린 수백 개의 풍등 가운데 한두 개가 전선에 걸리자 그는 절규했다. “이제 그만 날리세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 동지 자기가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데서나 잘 자고 밥도 잘먹던, 남포동 롯데백화점 앞을 맡은 동지도 혼자 4시간 동안 사회를 봤다. 30일 자정 목표지점으로 가는 유일한 길인 영도 산복도로의 안내조장은 자정쯤에 휴대폰 배터리가 나갈 정도로 바빴다. 그 산길에서 버텨 줬던 20여명의 부산 동지들은 새벽 4시에나 철수했다. 거듭 감사드린다.

일반시민들은 지침대로 부산역에서, 백화점 앞에서, 자갈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청학동으로 잘도 들어갔다. 그러나 선수들은 늘 불평이었다. 부산역 집회가 안 끝났는데 지금 시내버스를 타야 하느냐, 봉래동로터리에서 싸워야 하지 않느냐고 전화로 다시 물었다.

그날 밤 경찰은 공권력이길 포기한 시정잡배였다. 지침에 맞게 먼저 청학동으로 내려온 500여 참가자를 진압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진보정당·시민사회단체·노동계 등 자기들이 아는 모든 사람에게 전화해 몇 시 몇 분에 진압하겠다고 통보했다. 비열했다. 자갈치와 백화점·부산역·봉래동교차로·산복도로·시내버스 등 5곳으로 경력을 분산한 경찰이 85크레인 앞을 포기하고 청학동을 진압하긴 무리였는데도. 우리보고 알아서 청학동을 포기하라는 교란신호였다.

목표지점인 세일중공업 앞 수변공원 위로 새벽이 왔다. 산업화의 상징인 조선소가 즐비하고 반대편엔 달동네 서민들이 모여 사는 산비탈이 한눈에 들어왔다. 밤새 진행한 록페스티발의 볼륨이 조금만 작았으면 했다. 고단한 노동자·빈민의 달콤한 토요일밤 단잠을 방해한 것이 미안했다. 록페스티발은 시작부터 동성연애자 비하내용이 있었다는 참가자들의 항의도 있었다. 유일한 공공화장실이 있는 수변공원을 잡았지만 30분씩 줄 서서 용변을 보게 한 것도 미안했다. 2시간을 걸어와 1시간쯤 눈 붙인 사람 깨워 역할을 맡기는 것도 사람 할 짓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31일 아침 8시 수변공원 정리집회. “사회를 맡은 김여진 동지를 소개합니다”는 진행자의 음성에 참가자들은 “와아~”하고 열광했다. 3초 뒤 일제히 “에이, 아니잖아” 비슷한 이름의 사회자와 착각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경찰은 장난쳤다. 오전 10시 중앙동 한진중공업홀딩스 앞 기자회견 참가를 막으려고 다시 시내버스 앞에 차벽을 세웠다. 버스로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1시간씩 걸려서 다시 산복도로로 넘어왔다. 9시 반쯤 청학동 산복도로. 초등학교 2학년쯤의 한 참가자가 의경을 향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스무 살 남짓의 의경은 “응, 잘가”라고 답했다.

31일 정오 부산시청 앞에서 참가자를 배웅하고 배차실을 빌려 준 분에게 달려갔다. 사무실을 엉망으로 해 놓고 새벽에 급하게 빠져 나온 터라 다시 찾아가 머리 숙이자 그분은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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