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법률원에 처음 들어와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각 사건들의 무게감을 이기는 일이다.

법률원에서 맡게 되는 사건들은 기본적으로 노동사건이다. 그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사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부당한 사용자의 행태를 노동자들이 약자의 지위에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사건이거나,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 되는 해고를 당해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사건, 몇십 년 넘게 일한 사업장에서 다치고도 보상받지 못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건이다. 감정이입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사건들이다.

법률원에 들어와 아직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던 나에게 이런 사건들은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내가 맡은 사건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맡아서 진행하면 결과가 더 좋게 나오지 않을까?'라는 철없는 생각 때문이었다(철없는 생각은 요즘도 문득문득 나를 괴롭힌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이 사건 역시 이런 무게감을 잔뜩 안고 맡게 된 사건이다. 사건의 당사자는 KT에서 약 20여년간 사무직으로 근무를 하면서 KT 민주동지회 활동을 활발히 했던 분이다. 이미 몇 차례에 걸친 부당전직과 부당전보 등으로 지방노동위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쳐 행정소송까지 경험한 분이다.

이 사건은 민주동지회 활동의 일환으로 KT 주주총회에 참석하고자 하는 당사자에 대해 회사 관리자들이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위협을 가하고, 주주총회 당일 물리력을 동원해 참석을 저지하면서 시작됐다. 당사자가 이에 항의하자 회사측은 정기 인사이동에 맞춰 그를 기술직렬로 전직시켰다. 이에 대해 중노위에서 부당전직이 인정이 됐으나 회사가 불복해 소송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부당노동행위는 인정되지 않았으며 별개의 소송으로 접수해 병행심리를 하게 됐다).

사무직 근무를 하던 당사자에게 주어진 변경업무는 ‘현장 개통업무’였다. 외부 현장에 나가 Xdsl·PSTN·VolP·메가TV같은 상품을 설치하고 정비하는 일이다. 고객들의 불만사항을 해소하고 피해시설을 복구하는 일도 그의 몫이 됐다. 전봇대를 타야 하는 등 기술적으로 숙련된 사람이 할 수 있는 업무였다.

우리는 오랜 기간 사무직으로 근무했던 자를 아무런 절차(회사에는 사무직에서 기술직으로 전직할 경우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었다)도 준수하지 않은 채 기술직으로 변경한 것은 절차위반이고, 업무가 변경될 필요성도 없을 뿐 아니라 이번 업무변경으로 당사자가 정신적 피해와 고통을 호소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부당한 인사명령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회사는 인사명령은 회사 고유의 권한이고, 해당 인사명령은 정기인사 시기에 진행한 적법한 인사명령이라고 맞섰다.

1년여의 공방을 거쳐 중노위에 이어 행정소송 1심에서도 KT의 인사명령이 부당했다는 점이 인정됐다. 하지만 회사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2심에서도 인사명령의 부당성이 인정됐다. 그런데도 KT는 끝내 대법원 판결을 받고자 상고했다. 그리고 지난달 14일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로 이 사건의 인사명령이 부당전직이었음이 최종 확인됐다(부당노동행위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3년여의 소송으로 부당전직임이 확인된 이 당사자는 현재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KT는 위 사건의 인사명령을 통해 기술직 업무를 수행하던 중 진행된 업무평가를 근거로 또다시 부당전보를 했고, 부당전보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법정투쟁을 했다는 것과 민주동지회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이 노동자에게 각종 징계를 내렸다. 또 이러한 징계들을 근거로 다시금 최하위 고과를 부여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해고를 한 것이다(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KT에서 전사적으로 실시한 ‘인력퇴출방안’ 이른바 CP프로그램에 의한 것이었음이 KT 전직 관리자의 기자회견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나 회사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얼마 전 당사자를 만나 해고 이후 법률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전주로 내려갔다. 길고 긴 시간을 견뎌 하나의 승소 판결을 받으면 회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소한 다른 사유를 근거로 불이익처분을 하고 또다시 시간을 번다. 무한반복되는 회사의 탄압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굳건히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며 노동운동에 대한 확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느끼게 된다. 앞으로의 나도 이분과 함께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좀 더 단단해지리라 믿는다. 개개의 사건에 대한 무게감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 무게감을 신선한 자극으로 생각하면 그게 바로 극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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