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은 최근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유가족과 면담을 갖고 삼성백혈병 1심 판결 항소에 대해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를 이행하지 않고 항소를 제기했다. 절차적인 과정은 차치하고, 공단이 검찰에 보고한 ‘항소제기 의견서’에 드러난 항소이유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공단의 ‘항소제기 의견서’를 보면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상당인과관계론’이라는 산재보험법의 핵심적 이론에 대한 것이다. 공단은 삼성백혈병에 대한 법원 판결에 대해 “근로자로서 재직 중인 시점이 있었음과 이 사건의 상병 발병한 사실이 있음을 이유로 사적영역에 의한 상병까지 인정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법원의 판단을 왜곡해 그 가치를 절하시키고 있다. 또 공단은 “법원이 유해물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노출량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채 그 입증의 추단도 명백히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될 정도의 상당인과관계를 의미하는 점을 원심 법원이 도외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행 산재보험법 제37조제1항 단서에는 업무(업무적요인)가 재해발생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경우 업무상재해로 포함될 수 있는가에 대해 일단의 규정을 두고 있다. 법원은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로 판단되어야 한다”(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두3944 판결), “입증의 방법 및 정도는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해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사실에 의해 일정한 개연성이 추단될 정도로 입증되면 족하다”(대법원 1997. 11. 14 선고, 97누13573 판결)고 규범적 판단임을 일관되게 판시해 왔다.

공단은 상당인과관계에 대해 "명백히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될 정도의 상당인과관계를 의미한다"고 의견서에 수차례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명백함과 상당인과관계’는 개념상 모순되는 것이다. 공단의 주장은 판례 및 학설상 상당인과관계론인 “질병에 다수의 원인이 경합하고 있을 때 업무가 타 원인과 함께 질병의 공동원인으로 평가될 경우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는 공동원인설”과도 배치된다. 공단의 입장처럼 ‘명백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으려면 "질병에 대해 업무가 가장 유력하고 결정적인 원인으로 평가될 때만 업무와 질병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최유력원인설’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이는 현재보다 업무상재해의 인정범위를 좁히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산재보험 제도의 영역설정에 있어 시각 문제다. 항소제기 의견서에는 ‘업무상질병에 대한 산재보험법의 관점’이라는 제목 아래 공단이 산재보험 제도를 어떠한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나온다.
 
공단은 △산재보험 제도는 일반적인 사회보장 제도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를 특별히 규율하기 위한 제도로 근로자들의 일반적인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아님 △사업주가 보험료를 내고 피고 공단이 그들의 책임을 대신해 주는 보상보험으로 한정된 재원을 바탕으로 법령에 근거해 보험사업을 집행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이는 산재보험제도를 지나치게 보상보험이나 책임보험적 기능 측면으로 보는 단편적 시각에 불과하다. 산재보험 제도의 성립 과정이나 생활보장적 법리, 생존권적 기본권에서 산재보험수급권이 구체화되는 헌법적 가치 등을 고려하지 않고, 사업주의 보험료로 대신 보상을 집행해 주는 기관으로 ‘위치’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 현실을 살펴보자. 올해 공단은 9천756억원의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며, 이로 인해 산재보험기금 적립금이 7조5천491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기금 중 공단과 산업안전보건공단의 건설 및 이전비로 총 1천579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것이 결국 ‘책임보험 제도로 운영되는 산재보험제도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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