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유명 가수들은 매주 누가 노래를 제일 잘하는지 경연을 벌인다. 이 프로그램의 재미는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가수들의 ‘떨리는 마이크와 손’으로 상징되는 오디션 포맷이 주는 긴장과 흥분에 있다. 이소라나 김건모 같은 쟁쟁한 가수들이 탈락하거나 사퇴했지만, 이를 두고 "기량이 부족하니 가수활동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여러 번 음반을 낸 기성가수들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것 자체가 예술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반발도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고용한 예술가들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유명 탤런트 출신인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예술계에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며 산하 예술단체들에 오디션 실시 지침을 하달했다. 이에 국립중앙극장은 장관의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단체협약을 위반하는 강수를 두면서 오디션 실시를 공표했다. 국립관현악단 단원의 경우 심사위원 앞에서 대금이나 아쟁 같은 전공악기로 지정된 곡을 연주해야 하는데 심사점수가 5점 이상이면 통과, 그 이하면 탈락한다는 것이다.

단원들은 대부분 20여년 가까이 국악기를 연주해 온 예술가들이다. 국립중앙극장에 입사한 지 10년이 넘은 노동자도 다수다. 이미 기량을 검증받은 예술가들에 대해 지정곡에 의한 악기 연주를 시켜 평가하는 일회성 오디션은 고용불안을 조장해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노조를 흔들기 위한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국립중앙극장이 단체협약 해지와 동시에 오디션을 강행하자 노조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오디션 거부 파업'을 결의했다. 그럼에도 국립중앙극장은 예정된 공연일정을 취소하고 환불하면서까지 오디션을 강행했다. 오디션에 불참한 국립관현악단 전원에 대해 3회에 걸쳐 징계를 단행했다.

필자는 국립관현악단 단원들에 대한 징계무효확인 소송을 진행하면서 단원들이 일회성 오디션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정을 알게 됐다. 국립중앙극장에는 오디션 점수가 저조한 단원을 해고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는데, 2002년 노조는 힘겨운 투쟁 끝에 일회성 오디션 제도를 폐지하고 연중 공연활동을 평가하는 상시평가제도를 쟁취했던 것이다. 때문에 국립중앙극장의 오디션 강행은 과거에 폐지된 일회성 오디션 제도를 부활하려는 시도임이 명백했다.

‘나는 가수다’에서 탈락한 가수들에 대해 가수활동을 그만두라는 여론이 없는 것은 오디션 자체가 객관성이나 공정성에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본질적으로는 예술활동에 우열을 매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같은 이유로 청소년기부터 기량을 연마해 연주자로 활동해 온 국립중앙극장 예술노동자들에 대해 일회성 오디션 평가를 근거로 생존권을 박탈할 수는 없다. 1년에 한 번 치는 시험성적이 나쁘다고 직장에서 탈락(해고)시키는 것은 ‘나는 가수다’의 열렬한 시청자의 상식에도 반하는 무리수다.

다행히 서울행정법원은 징계무효확인 소송에서 "오디션 시행이 노사 단체협약 규정을 위반한 것임이 명백하고, 오디션 참가를 강제했다면 위 협약 규정에 위반되는 부당한 업무상 명령에 해당하므로, 원고들이 이에 불응했다고 하더라도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국립중앙극장의 ‘100회전 돌기를 하라’는 오디션을 거부해 해고된 국립무용단원 두 분에 대한 소송도 진행 중인데, 35년 이상 직업무용가로 활동한 예술노동자들의 명예를 침해한 오디션 지시에 대해 같은 판단이 내려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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