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 같은 비가 며칠 동안 계속되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산사태로, 홍수로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잃었던 그 기간, 부산에는 9천여명이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35미터 높이의 고공 크레인에서 190여일간 농성 중인 해고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과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선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에게 ‘희망의 연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부산의 대표적 기업이라 할 수 있는 한진중공업은 몇 년째 수주를 하지 못해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며 희망퇴직자를 포함해 400여명을 퇴출시켰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영도조선소를 폐쇄하기 위한 수순으로, 노조를 와해하기 위한 음모에 지나지 않는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임금수준이 높아 경쟁력이 떨어져 수주를 하지 못했다는 회사의 주장과 달리 조합원들의 임금수준은 다른 조선업체에 비해 60~70% 정도에 불과하고, 회사의 영업이익은 다른 조선사의 평균 3배에 달한다고 한다. 금융위기로 조선업계가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다른 조선업체들의 수주소식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유독 한진중공업만 단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같은 기간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현장인 수빅조선소는 60여척을 수주했다. 결국 노조의 주장처럼 고의적으로 영도조선소의 수주물량을 필리핀 수빅으로 빼돌렸을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정리해고 발표 후 곧바로 174억원이 한진중공업 대주주와 가족·경영진에게 주식배당금으로 지급됐다. 정리해고자·희망퇴직자 400여명의 1년 연봉보다 많은 금액이다.

더욱이 노조 지회장이 노조와 조합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현장복귀를 선언하자 한진중공업은 곧바로 컨테이너선 4척과 군수지원정 2척을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대규모 정리해고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수주를 하지 않았거나 수주 사실을 감춰 왔다는 노조의 주장을 뒷받침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한진중공업은 부당한 정리해고를 인정하지 하지 않고 지방노동위원회조차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기각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이제 한 기업의 노사 문제가 아니다. 한 노동자가 35미터의 고공 크레인에서 혹한의 겨울 눈보라를 견디고 태풍과 장맛비를 이겨 내며 펄펄 끊는 철제 위에서 폭염과 싸우고 있고,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달려오고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희망단식 릴레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라는 부당한 횡포에 맞선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연대와 희망’이 됐다.

85호 크레인은 2003년 한진중공업 노조 지회장이었던 김주익 열사가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129일간 농성했던 곳이다. 한진중공업은 그가 목숨을 잃고서야 구조조정을 중단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서글픈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나는 내 발로 살아 내려가고 싶다. 그런 날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며 하루도 빠짐없이 계단에서 내려가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몇 차례나 더 희망버스가 달려와야 할 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이 수없이 연습한 대로 35미터의 가파른 철제계단을 무사히 걸어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땅의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흘리는 값진 땀방울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금꽃을 피우리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