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노조(Company Union) 혹은 어용노조라는 의혹을 받아 왔던 삼성에버랜드노조가 지난달 23일 설립신고증이 나온 지 엿새 만인 같은달 29일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단협 유효기간은 2013년 6월 말까지 2년간이다. 지난 18일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삼성노조(위원장 박원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삼성에버랜드 노사의 단체협약 만료 3개월 전인 2013년 3월 말까지 사측에 교섭요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삼성이 교섭권을 선점하기 위해 어용노조를 설립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19일 경기도 용인시청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에버랜드노조는 지난 15일 단체협약 신고서를 용인시청 기업지원과에 제출했다. 단협의 체결일자는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전인 지난달 29일이었다. 단협에는 임금합의서까지 포함돼 있어 에버랜드 노사의 임단협은 2013년 6월29일까지 효력을 가진다.

무노조경영을 철저히 고수한 삼성의 지주회사 에버랜드에 열흘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노조설립부터 단협 체결까지 속전속결로 이뤄진 배경은 무엇일까. 삼성측은 복수노조 허용 이후 노조설립이 유력시됐던 에버랜드에서 교섭권을 선점하기 위해 창구단일화 제도의 빈틈을 십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에버랜드 리조트 소속 노동자 4명으로 구성된 삼성노조는 18일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에서 설립신고증을 받고 합법노조가 됐다. 그럼에도 2013년 3월 말까지는 회사에 교섭요구조차 할 수 없다. 이달부터 시행된 창구단일화 제도에 따라 삼성노조는 에버랜드노조의 임단협 만료일 이전 3개월이 되는 날부터 교섭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법 시행령(제14조의2)과 노동부의 복수노조 매뉴얼에 따르면 사업장에 단협이 존재할 경우 그 단협의 유효기간 만료 3개월 전부터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에버랜드처럼 기존노조가 단협을 체결했다면 복수노조 허용에 따라 신규노조가 설립돼도 최대 2년간 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는 식물노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에버랜드의 교섭권 선점 사태는 창구단일화 제도가 헌법상 보장된 교섭권을 박탈할 것이라는 노동계와 학계의 우려를 현실로 입증한 꼴이 됐다.

삼성노조는 “용인시청에 에버랜드노조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실체도 알 수 없는 어용노조에 교섭권을 빼앗기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한편 삼성은 삼성노조 설립신고증 교부 당일인 18일 조장희 노조 부위원장에게 개인정보 유출 등의 혐의로 징계해고를 통보했다. 김영태 노조 감사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징계 수순을 밟고 있다. 노동계는 “삼성이 노조 설립 시도에 대한 시범케이스로 삼기 위해 삼성노조 간부들을 표적 징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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