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또 일방적으로 결정됐다. 지난 13일 새벽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만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강행처리했기 때문이다. 노·사·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최저임금위가 구성돼 있음에도 노동자위원은 배제된 것이다. 노동계와 야권은 ‘날치기 처리는 무효’라며 박준성 최저임금위원장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런 사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4년 동안 정상적으로 표결처리된 것은 단 한 번밖에 되지 않았다.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번갈아 사퇴하기 일쑤였다. 2008년과 지난해에는 사용자위원이 사퇴했고, 노동자위원과 공익위원만 표결에 참여했다. 올해는 동반사퇴한 노사위원 중 사용자위원이 표결 당일 출석했고, 표결을 강행하는 데 힘을 실었다. 2009년에만 노·사·공익위원 모두가 출석해 표결로 처리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최저임금위가 사실상 파행운영을 거듭한 셈이다.

최저임금 인상액도 수긍하기 힘들다. 내년 최저임금은 4천580원으로 올해보다 시간당 260원(6%) 올랐다. 주 40시간 기준으로 월 95만7천220원, 주 44시간 기준으로 월 103만5천80원이다. 박준성 위원장은 “물가상승률과 임금인상률, 생계비 증가율·경제성장률, 중소·영세기업의 지불능력을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습처리된 최저임금 인상률은 최근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마이너스 인상이다. 지난해 노동자 생계비 상승률(6.4%)에도 못 미친다. 올해 초 홍익대 노동자 파업을 계기로 타결된 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 청소노동자의 시급인상안 4천600원보다 낮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2008년(8.3%)·2009년(6.1%)·2010년(2.75%)에 한 자릿수로 떨어진 최저임금 인상률은 경기가 회복된 올해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참여정부 기간인 2004년, 2005년, 2007년에는 10% 이상 올랐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의 결정적 열쇠를 쥔 공익위원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 탓이다. 최저임금위 전원회의 초기에는 노동자위원(26%)과 사용자위원(0%) 간의 인상률 격차가 컸지만 노사는 막판에 10.6%대 3.1%까지 좁혔다. 공익위원은 1차에 이어 2차 중재안(6~6.9% 인상안)까지 던졌지만 사실 근거가 없다. 노사 양측 제시안의 중간치를 중재안이라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공익위원들은 중재안 구간 중 최저치를 기습처리하는 데 주력했고, 이후 이렇다 할 설명도 하지 않았다. 박준성 위원장만 물가상승률 등 여려가지 사항을 고려했다고 강변했을 뿐이다. 노동계와 야권이 반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최저임금제도 전반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 현재 야권에서는 최저임금제도 개선 법안을 제출했다. 이미경 민주당 의원은 이달 6일 국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최저임금위가 파행을 거듭하는 이유로 정부 개입과 독립성 부재를 꼽았다. 그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익위원들이 정부의 거수기 역할만 하고, 실질적인 중재자 역할을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고려해 최저임금위의 심의를 거치되 국회가 중재해 최종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노동계에선 최저임금이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에 이르도록 법에 명문화하자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위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공익위원을 임명하기보다 노사에 추천권을 주는 방안도 제안하고 있다.

미미한 최저임금 적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자는 233만명에 육박하지만 실제 적용률은 3%다. 최저임금제도가 법제화된 후 23년 동안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낸 사업장은 6곳, 법률소송 사례도 85건에 불과하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고용노동부의 부실한 관리·감독과 솜방망이 처벌 탓에 최저임금법 위반 사업장이 줄지 않는 것”이라며 “최저임금법 위반 사업주에 대해 과태료를 바로 부과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 의원은 지난 6월 최저임금법 위반 사업주가 부족액 지급을 거부할 경우 국가가 이를 지급하고 구상권을 청구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습처리된 최저임금 인상안은 열흘간의 이의제기 기간을 거친다. 물론 그간의 관행을 볼 때 번복될 가능성은 없다. 노동부장관은 다음달 5일 이를 고시할 것이다.
현행 최저임금제도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최저임금제도를 대폭 수술해야 한다. 그래야만 저임금 노동자 보호와 생계보장이라는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를 실현할 수 있다.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최저임금제도 개선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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