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경제학의 경제법칙 중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있다. 그레샴의 법칙은 ‘그 돈이 표시하는 액면가치(명목가치)가 같으면서 물건으로서의 가치(실질가치)가 다른 두 화폐가 있을 때 실질가치가 높은 쪽(양화)은 별로 유통되지 않고 실질가치가 낮은 쪽(악화)이 널리 유통 된다’는 의미다. 그레샴의 법칙은 현대에 와서는 동종의 정책이나 상품 중 나쁜 것들이 좋은 것들을 압도하는 사회 병리현상의 패러독스를 설명할 때 많이 이용되고 있다. 14년여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1년 7월1일부터 시행된 복수노조제도 역시 그레샴의 법칙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현재까지 복수노조가 설립 신고된 사업장에는 최근 수년간 노사갈등으로 전국적인 이슈가 됐던 사업장이 대다수 포함돼 있다. 또한 지난달 20일에는 삼성에버랜드노조가 용인시청에 설립신고를 내고 23일 신고증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삼성그룹의 ‘복수노조 대비용 알박기(?) 노조’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사용자들은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가지는 취약점을 십분 활용해 기존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위협 또는 박탈하거나, 향후 설립될 수 있는 신설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사전 차단하고자 하는 명백하고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주도적으로 복수노조의 설립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복수노조 설립이 금지된 시기에 ‘유령노조’로 신규 노조 설립을 사전에 차단했던 사용자들의 행태와 너무나 닮은 모습이다. 사용자들의 이러한 행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81조(부당노동행위) 제4호에서 정하고 있는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에 해당함이 명백함에도 사용자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 역시 이에 대해 어떠한 대책도 강구한 바 없고, 이를 조사할 의지조차 천명한 바 없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2011년 7월1일 이후 교섭이 진행되고 있는 복수노조가 설립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해도 ‘지금 노조가 설립되지 않았더라도 형식적으로라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면 2년간 교섭대표노동조합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시행을 독려(?)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역시 향후 설립될 수 있는 신설노조의 교섭권을 사전 차단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노조법 제29조의2(교섭창구단일화 절차) 제1항에서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시행시기를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조직형태에 관계없이 근로자가 설립하거나 가입한 노동조합이 2개 이상인 경우’로 명백히 규정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복수노조제도는 ‘헌법상 단결권의 완전한 보장과 노동자들의 단결 선택의 자유 보장’을 위해 시행된 제도다. 복수노조의 설립과 운영 여부는 전적으로 노동자들의 선택에 의해 결정돼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용자들이 복수노조 설립의 주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에 동조하는 고용노동부 역시 보기에 민망하다.
사용자들과 고용노동부에게 다시 한 번 요구하고 싶다. 복수노조를 원래의 주인인 노동자들에게 되돌려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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