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파업에 들어갈 때는 1주일 안에는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속초에 내려갈 때 즐거운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마음이 무겁네요.”(금융노조 SC제일은행지부 조합원 김아무개씨)

11일 오전 9시께 서울 여의도 문화광장 가장자리 근처 도로. 전세버스 20대가 전세버스가 줄지어 섰다. 버스 주위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등산 배낭을 메고, 손에는 여행용 트렁크 가방을 들고 있었다.

이날로 파업 3주일째를 맞이한 금융노조 SC제일은행지부(위원장 김재율) 조합원들이었다. 파업 중인 강원도 속초시 한 콘도를 떠나 주말 동안 집에 들렀다가, 다시 파업장소로 가기 위해 모이는 중이었다.



파업 장기화에 ‘눈물’도

SC제일은행 노사는 7~10일 나흘간 집중협상을 진행했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개별성과급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임금인상을 비롯해 임단협을 먼저 체결하고 개별성과급제와 관련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자"는 지부의 의견과 "먼저 개별성과급제 시행을 보장하라"는 회사 의견이 평행선을 달렸다.

애초부터 노와 사, 어느 한쪽이 백기를 들지 않는 이상 끝나기 어려운 파업이었다. 은행은 “반드시 시행하라”는 영국 본사의 지침을 받았고, 지부는 급여 삭감은 물론 퇴출까지 이어질 임금체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면서 파업은 2주일을 넘어 3주일째로 접어들었다.

버스에서 만난 김아무개(41) 조합원은 가족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열이 나는데 병원에도 함께 못 갔어요. 아침에 출근하고,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퇴근해 가족들 얼굴 보면서 푸는데, 이런 일상이 통째로 없어졌어요.”

영업점 폐쇄에 ‘한숨’

파업이 길어지면서 노와 사가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은행은 이날부로 373곳의 영업점 중 43곳을 임시로 폐쇄했다. 계약직과 간부 등 비조합원만으로 영업점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번 떠난 고객은 잡기 힘든 게 금융업이다.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은행 노동자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김씨는 “내가 지켜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는 게, 속초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 있다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 김아무개(26)씨는 “안 그래도 (지점이 많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지는데, 고객에게 불편을 주면서까지 개별성과급제를 추진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수술 받고 왔어요”

3시간30분 만에 도착한 파업현장. 지부 간부들은 새로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보고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두 돌도 안 된 아이가 수족구에 걸려 간호하다가 뒤늦게 파업에 참가했다는 여성 조합원은 “그동안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해 마음이 불편했다”며 활짝 웃었다.

“집에 있으면서 여기(속초)에 있는 동료들에게 분위기를 전해들었어요. 파업이 길어지니까 가족들도 걱정하고 있어요. 그래도 2주일 동안 여기에 있었던 사람들이 더 힘들지 않았을까요?”

옆에 있던 다른 여성 조합원은 파업 돌입 전 수술을 받는 바람에 이제야 참가하게 됐다. 그는 “아직 몸조리를 해야 하는데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가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재율 위원장은 “주말에 외출을 보내면 꼭 몇 명이 추가로 들어온다”며 “파업 첫날보다 인원이 조금 늘었다”고 강조했다.

이날 서울과 부산 등 전국 10개 지역에서 출발한 60여의 전세버스가 속초에 도착했다. 지부는 3천300여명의 조합원 중 파업이 금지된 전산담당 직원과 육아휴직자 등을 제외하고 2천800명 이상의 조합원들이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은행과 노동부의 공식 집계만 봐도 2천600명 이상의 조합원들이 업무를 중단했다.

김학태·윤자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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