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동안 용접일만 해 온 하청노동자 김아무개(남·48)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지난 2009년 5월이었다. 원청회사인 한 보일러 공장에서 용접작업을 마치고 검사를 기다리던 중 감리를 담당했던 원청회사 이사의 지시를 받고 사다리를 오르던 중 왼쪽 무릎이 접질렸다. 이어 병원에서 ‘좌측 슬관절부 외측 원형연골판 파열’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산재요양을 신청했고, 근로복지공단은 ‘기왕증’을 이유로 승인을 거절했다. 공단은 김씨의 연골형태가 정상적인 ‘반월상 연골’이 아니라 ‘원판형 연골’이고, 이는 선천적인 기형이기 때문에 김씨의 무릎 파열은 내재적 질환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업무와 재해와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씨는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판사 김영식)은 공단의 요양불승인 처분을 취소했다.

법률사무소 ‘노동과 삶’은 10일 서울행법의 판결문을 공개하며 “재해부위에 선천적 기형이 있을 경우 재해자의 업무이력·신체조건을 따지지 않고, 기왕증에 의한 퇴행성 변이로 보고 산재신청을 불승인 처분하던 근로복지공단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고 밝혔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원고가 비록 원판형 연골을 갖고 있었으나 정상적인 노동과 일상생활이 가능했다”며 “이번 사고로 인해 상병이 발생했다면 사고와 상병 간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원판형 연골이 희소한 질환으로 볼 수 없고, 원고도 사고일까지 아무런 증상이나 치료 없이 근로를 했다”며 “원판형이 아닌 반월상 연골도 한쪽 무릎에 과도한 하중이 몰리면 연골파열이 가능한데도 동일한 조건에서 정상적인 연골이 파열되지 않는다는 명확한 의학적 진단이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특히 법원은 “이런 상태에서 원판형 연골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과관계를 부정한다면 오히려 특이체질이나 기초질병 보유자를 차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최성호 변호사(법률사무소 노동과 삶)는 "선천성 기형이나 특이체질 보유자의 경우에도 재해자 개인을 기준으로 업무상 과중부하를 판단해야 한다는 판결"이라며 "그동안 근골격계 부담작업을 수행해 왔어도 선천적 또는 체질적 요인으로 산재 불승인을 받아 왔던 근로자도 업무상재해를 인정받을 길이 열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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