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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활동가의 죽음
99년인가, 2000년인가 그는 캠코더를 처음 잡았다. 전력노조 조합원으로 한국전력 민영화에 반대하는 싸움을 벌이던 와중이었다. 회사는 2001년 노조간부였던 그를 사업장으로 인사발령했다. 이후 일을 하면서 노조활동을 했다. 동시에 시그네틱스 등 투쟁사업장에 가서 영상을 찍어 올렸다. 그는 “연대활동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연대범위는 갈수록 넓어졌다. 2003년부터 이듬해까지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였던 이주노동자들을 촬영하면서부터는 아예 회사를 그만뒀다.

올해 3월31일이었다. 사회단체에서 7개월 남짓 영상편집을 돕다가 다시 거리로 나선 날이었다. 그는 “다시 데뷔하는 날”이라고 했다. 영상을 편집하느라 전날 밤을 새고 아침에 서울시청의 재능교육지부 농성장, 이어 전주버스 노동자들의 규탄집회가 열린 서울 영등포의 민주당사로 달려갔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술도 한잔했다. 그런데 그만 그 자리에서 캠코더와 노트북, 활동비로 받은 현찰이 든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호주머니를 뒤지니 3만원이 나왔다. 그 돈으로 소주를 사들고 인천 쪽방으로 갔다. 9일 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수중에 남은 돈이 2천700원인데 이 돈으로 피시방에 와서 인터넷을 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전화드릴 돈이 없습니다. 당장 먹을 쌀이 없는 상황입니다. 굶게 생겼습니다. 일단 죽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외면 마시고 도와주십시오. 공중전화로 전화드릴 돈이 없어 마지막 현찰로 이메일을 보냅니다.”

지난달 25일 그는 인천 연수구의 한 쪽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숲속 홍길동’으로 알려진 고 이상현씨였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한전을 퇴직한 뒤 열심히 살았음에도 쪽방과 고시원을 전전했던 그의 삶을 알게 됐다. “우파들이 안 사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노조는 자금이 있으면서도 공짜로 보려고 했다. 밥이나 한번 사주고는 말았다”는 격앙된 목소리도 나왔다. 이참에 구제기금을 만들자는 대안이 제안됐다. 지인들은 최근 레프트119센터(cafe.daum.net/left119)를 만들어 구제기금을 조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같이 활동하는 동지 하나 못 구하는 좌파진영이 노동자·민중의 삶을 개선하겠다고 얘기하는 것은 모순 아닙니까.” 기억은 유한하다. 날이 가면 잊혀진다. 그래서 더 서둘러야 한다. 말이 아닌 행동이 필요한 때다.

한계희 기자  gh1216@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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