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군사정권이 지난 63년 복수노조를 금지한 지 반세기 만인 이달 1일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에 복수노조가 허용됐다. 노동계는 단결권 보장 차원에서 복수노조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우려가 적지 않다.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위헌소송이 제기됐고, 제도 자체가 복잡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매일노동뉴스>가 8회에 걸쳐 복수노조 제도의 모든 것을 해부한다.

[게재순서] 1. 복수노조 시대, 약일까 독일까 2. 기득권 인정하고 소수노조 권리 제한 3. 과반수 확보경쟁 불붙어 4. 정규직·비정규직, 사무직·영업직 분화 5. 부실한 법적기준, 부실한 노사관계로 6. 파업 어려워지고, 부당노동행위 쉬워지고 7. '헤쳐 모여', 양대 노총 구도 재편되나 8. 노조법 개정 논란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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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 등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던 지난 2009년 12월30일 오전. 이날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여야 간 토론이 벌어졌다. 마지막까지 논란이 됐던 의제는 초기업노조의 교섭권 침해 여부였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98년부터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병존해 오던 (산별)노조들의 교섭권을 창구단일화 속에 묶어 두려는 것이다. 산별노조 운동을 말살하자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홍 의원은 “사용자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합쳐서 (산별노조로) 오는 것을 싫어하니 당연히 동의할 리 없다”고 비꼬았다.

당시 노동부장관이었던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이런 지적에 대해 “(산별노조의 예외를 인정하면) 창구단일화 기본 틀을 뒤흔들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섭을 관행적으로 별도로 해 왔는데 사용자가 무리하게 단일화를 요구할 경우에 대비해 가령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혹은 지금 관행의 필요에 의해, 혹은 근로형태가 아주 현격한 차이가 있거나 해서 어떠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별도교섭을 할 수 있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바로 교섭단위 분리제도다.

산별교섭-창구단일화 절충점?

개정된 노조법에는 교섭단위 분리 신청조건과 관련해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고용형태·교섭관행 등을 고려해 교섭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고 명시돼 있다. 노조나 사용자가 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하면 노동위가 심의를 통해 분리 여부를 결정한다.

교섭단위 분리제도가 산별교섭을 염두에 뒀다는 것은 노조법 개정을 주도했던 추미애 민주당 의원(당시 환노위원장)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환노위를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은 추 의원의 제안이 대부분 수용됐다는 뜻에서 일명 ‘추미애법’으로도 불렸다. 환노위에서 노조법 의결을 강행하던 날 그의 발언은 이랬다.

“창구단일화의 정반대에 있는 것이 현재 산별교섭을 제약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를 받아들이면 하나는 제약받을 수밖에 없는 동전의 앞과 뒤 같은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현재 산별교섭을 사용자가 동의해 주지 않는 상황, 조직분리가 안 되는 상황, 근로의 형태에 따라서 분리교섭을 해 주지 않는 상황은 노동위원회가 개입해서 인정해 줘야 되는 것이고, 그 인정을 못 받는 경우에 그것은 창구단일화에 같이 들어와서 응해 줘야 합니다.”

노조 분화 기폭제될까

교섭단위 분리절차는 노조법 시행령에 규정돼 있다. 시행령에 따르면 교섭단위 분리는 사용자가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기 전, 이미 공고했다면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된 뒤에 신청할 수 있다. 요건은 근로조건의 차이·고용형태·교섭관행의 차이다. 직종에 따라 임금체계나 인사제도·근무시간에서 격차가 있다면 근로조건의 차이를 근거로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할 수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도 정규직과 고용형태나 근로조건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따로 교섭하게 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기능직과 영업직·사무직에서 직종별로 나눠 채용하거나 직종전환이 차단돼 있다면 교섭단위 분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교섭단위 분리가 인정되면 해당 노조는 창구단일화 대상에서 제외된다. 독자교섭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교섭단위 분리제도가 노조의 분화를 촉진시킬 것이라는 예상은 그래서 나온다. 소수노조의 교섭권이 제약되는 노조법상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피해 갈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이 예상했던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위협요인이기도 하다.

<매일노동뉴스>가 노조법 개정 직전 한 대기업이 작성한 ‘복수노조 대비전략’을 입수해 살펴보니 이 기업은 복수노조 설립 유형으로 3가지 경우를 들었다. 노조의 분열, 사무직의 세력화, 그리고 비정규직의 세력화였다. 대비전략에는 "사무직은 회사 기밀을 이용해 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담겨 있었다.



사용자의 역이용 가능성도 높아

사용자가 교섭단위 분리를 활용할 여지도 있다. 사용자들도 독자적으로 노동위에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총은 최근 회원사에 배포한 ‘복수노조 대응 지침’에서 “별도 교섭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 기업상황에 맞는 교섭방식을 택하라”고 밝혔다. 회사노조(Company Union)를 설립해 개별교섭을 할 수도 있고,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철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참터)는 “교섭단위 분리제도가 비정규직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노무사는 “비정규직을 포함해 교섭하고 싶지 않은 노조가 있을 수 있다”며 “경쟁노조가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경우 비정규직을 교섭단위에서 분리해 내면 해당 노조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기업별노조로 조합원이 50명인 A노조와 산별노조지부로 정규직 40명, 비정규직 20명으로 구성된 B지부가 한 사업장에 있다면, 고용형태에 따라 교섭단위를 분리하면 A노조가 과반수 노조가 된다.

교섭단위 분리 여부, 노동위 손에

6일 현재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한 노조는 2개다. 복수노조 허용 첫날이었던 지난 1일 신청서를 접수한 도로교통공단과 한국환경공단이다. 모두 공기업 선진화정책에 따라 지난해 통폐합된 공공기관이다. 도로교통공단에는 도로교통공단노조와 도로교통공단 운전면허본부노조, 한국환경공단에는 환경자원공사노조와 환경관리공단노조가 있다. 노조법에 따르면 교섭관행이 달라 교섭단위 분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노동위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노동위가 교섭단위 분리 여부를 놓고 어떤 태도를 보일지도 관심사다. 현행법은 1사1교섭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창구단일화 제도는 복수노조가 허용되더라도 교섭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막겠다는 목적에서 도입됐다. 노동위로서는 교섭창구 단일화의 예외조항인 교섭단위 분리제도를 남발해 창구단일화 제도를 흔든다는 비난을 듣고 싶지는 않을 듯하다.

교섭단위 분리가 노사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킬지 전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복수노조 허용 첫날에 접수된 2개 노조의 교섭단위 분리신청과 관련해 노동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진다.

교섭단위 분리와 타임오프 적용
Q. 복수노조의 교섭단위 분리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적용을 위한 사업장 분리가 같은 건가요.


A. 노조법에서 사업장 단위로 분리하는 것은 교섭단위 분리와 타임오프 한도 결정을 위한 사업장 분리 두 가지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교섭단위 분리와 타임오프 사업장 분리는 다릅니다.
타임오프 한도를 정하기 위한 사업장 분리는 법령이 아니라 고용노동부 지침에 명시돼 있습니다. 지침에 따르면 사업은 경영상의 일체를 이루는 기업체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장소적 관념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공정하에 통일적으로 업무가 수행되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합니다. 경영주체인 법인체는 하나이므로 모든 사업장·사업부서의 전체 조합원수를 고려해 타임오프 한도를 정해야 합니다. 다만 노동부는 각각의 사업장이 독립성이 있는 경우 각 사업장의 조합원수 규모에 따라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각각 적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교섭단위 분리는 노조법에 따라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고용형태·교섭 관행 등을 고려하되 노사 간 자율이 아니라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교섭단위 분리는 사업장 단위로도 가능하고, 직종이나 고용형태 등 사업장과 상관이 없습니다. 사업장별로 타임오프를 적용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교섭단위 분리와 연관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2개의 교섭단위별 교섭대표노조가 자율교섭의 형태로 또는 공동으로 타임오프에 관한 교섭을 진행하거나 별도의 협정을 체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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