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수노조시대가 열렸다. 2011년 7월1일. 기업단위조차도 이제 복수의 노조 설립이 허용됐다. 지금까지는 이미 기업별노조가 설립돼 있는 경우 그와 조직대상을 같이 하는 새로운 기업별노조를 설립할 수 없었다. 97년 3월13일 제정된 노조법이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하면서 부칙 제5조의 경과규정을 통해 기업별노조의 경우 시행을 유예했다. 그 뒤 몇 차례 노조법 개정을 통해 시행하지 않다가 마침내 시행됐다. 그동안 법 때문에 노조 설립을 할 수 없었던 사업장에 대해 이제는 악법 때문에 조직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 설립신고된 기업별노조가 있다고 해서 기업별노조의 설립신고를 받아 주지 않는 일은 더 이상 행정관청이 할 수 없게 됐다. 이 나라 노동운동은 삼성·포스코 등 사실상 무노조 사업장들을 얼마든지 기업별노조로서 조직할 수 있게 됐다. 드디어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이 나라 노조운동은 삼성에 노조 깃발을 세울 수 있게 될 것인가.

2. 이 나라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삼성은 직원들에게 잘해 주니 노조가 없다.” 이에 대해서는 나는 얼마든지 말해 줄 수 있다. 그동안 삼성이 노조를 설립하려는 직원들을 어떻게 잘해 줬는지, 회유와 협박·탄압 사례를 들어주면 된다. 굳이 노조가 뭐고 왜 필요한지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다. 삼성은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탄압했고 그것이 오늘 삼성이 말하는 무노조경영 신화를 이뤘다. 삼성이 직원들에게 잘해 줘도 일부 직원들은 노조를 설립하고자 했고 그것을 삼성은 회유와 협박·탄압해서 좌절시켰다. 그러니 “삼성은 직원들에게 잘해 주니 노조가 없다”는 말은 무노조 삼성에 대한 올바른 말이 아니다. “삼성은 직원들에게 잘해 줘서 노조가 없는 게 아니다”는 말이 올바른 것이다.

3. 그러나 이 나라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삼성은 직원들에게 잘해 주니 노조가 없어도 된다.” 이에 대해서는 나는 얼마든지 말할 수는 없다. 노조 설립에 대한 탄압 사례를 드는 것만으로 이 말이 잘못이라고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없다. 이 말은 삼성자본만이 아니라 노조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노조가 있는 기업보다 삼성이 잘해 준다. 그러니 노조가 없어도 된다. 이렇게 사람들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노조가 없는 삼성 직원들의 것보다 더 쟁취해 주지 못한 이 나라 노동조합을 두고 하는 말이 된다.

이에 대해 노조활동가인 당신은 말한다. 독점과 횡포로 대기업 삼성은 지급능력이 되는데, 노조가 있는 중소기업은 그럴 수 없어 그런 거라고. 과연 그런 걸까. 그래서, 그래야 하는 걸까. 그럼 중소기업 노동자는 앞으로도 대기업 노동자 수준의 임금 등 권리를 확보할 수 없다는 건데, 이건 더 심각한 걸 당신은 말하고 있는 거다. 단순히 삼성만을 두고 당신은 말한 거겠지만 이건 당신의 노조, 이 나라 노조운동에 관해 말해 버린 것이다. 기업별협약 체계로 말미암아 노조 내부에서도 사업장에 따라 임금 등 조합원의 권리가 현저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데 당신은 이것을 기업의 지급능력의 문제로 평가해 버린 것이니, 아직 임금 등 권리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조합원과 노동자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급능력이 되는 대기업 조합원은 높은 수준에서 임금 등 권리를 확보해야 하고,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조합원은 그보다 낮은 수준에서 임금 등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의 크기는 소속 사업장의 규모나 지급능력의 크기에 비례한다. 당신이 이렇게 인식하고 산별노조활동을 하고 있다면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기대했던 당신의 조합원들의 꿈을 꺾고 있는 것이다. 소속 사업장을 떠나서 같은 노동을 하는 노동자에게는 임금 등 권리를 동일하게 내놔라. 이게 산별노조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여야 하고 투쟁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였나. 지금까지 금속노조가, 이 나라 산별노조들이 소속 사업장을 떠나 조합원 권리확보를 위해 동일한 요구를 해서 함께 투쟁하지 못했던 게. 단지 산별교섭 쟁취·산별노조 활동 보장 이런 거 말고. 정말 조합원 전체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지 못했던 게 이걸 말해 주면 기껏해야 대기업 조합원 권리를 깎아서 중소 비정규직 조합원 권리 확보해 줘야 한다는 궁리나 해대고. 어쨌든 노조활동가인 당신에게는 삼성 직원들의 임금 등이 노조가 있는 사업장 노동자보다 우월하다는 것에 대해 삼성의 지급능력을 핑계로 대서는 안 된다고 나는 말할 수밖에 없다.

백 보 양보해서 당신 말대로 중소기업은 지급능력이 삼성보다 떨어지니 그렇다고 치자. 그럼 삼성과 경쟁하는 대기업의 노조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노조들이 임금 등 조합원의 권리를 삼성보다 더 확보했다면 자연스럽게 이 나라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해야 한다는 의식은 갖고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복수노조시대가 됐다고 한국노총이 ‘무노조 사업장 지원 TF팀’을 구성하고, 민주노총이 ‘삼성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킨다고 요란을 떨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삼성은 직원들에게 잘해 주지 못하니 노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조합원의 임금 등 권리를 삼성 직원들보다 더 확보하지 못했다면 이건 심각하다. 그건 이 나라 노조운동에 자꾸 노조가 무엇을 한 것이냐고 묻게 된다. 만약 더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면 이 나라 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해야 한다는 의지를 잃게 된다. 아무리 노동자에게는 노조가 있어야 한다고, 헌법은 단결권을 보장했다고 설명해 줘도 사람들은 삼성에 노조가 없어도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삼성 직원들에게 아무리 노조를 조직해야 한다고 말해 줘도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면 그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삼성 직원들은 말할 것이다. “우리는 노조가 있는 당신들보다 낫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삼성은 직원들에게 잘해 주니 노조가 없어도 된다.”

4. 결국 삼성의 무노조는 삼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노조의 문제라는 것을 말해 준다. 삼성이 직원들에게 보장해 준다는 임금·복리 등 처우와 고용보장 등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이 나라 노조가 조합원에게 쟁취해 주지 못한다면 삼성에서는 사용자가 보장해 준 권리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게 된 예외적인 자만 삼성노조의 깃발을 들게 될 것이다. 무노조 경영의 삼성이 존재하는 한 이 나라에선 노조운동이 무얼 쟁취한 거냐고,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냐고 묻게 될 것이다. 무노조 삼성은 이 나라 노조운동이 쟁취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과제일 수 있다. 현재 노조조직률 10%를 극복하기 위해, 미조직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노조 설립방법을 알려 주는 것만으로 가능하다고 보고 노조설립지원센터를 꾸려 대응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노조가 조합원의 임금·복리·고용 등 권리를 쟁취한다면 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하고 가입하기 위해 나설 것이다. 노조에 가입하기만 하면 보다 높은 급여를 받고 쉽게 해고되지 않는데도 가입하지 않고서 낮은 급여를 받고 해고되겠다는 건 바보이고, 이 바보 직원들을 제외하고도 얼마든지 이 나라 노조는 조직률을 높일 수 있다. 노조는 별 게 아니다. 노동자들이 사용자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겠다고 조직한 단체다. 거창한 강령을 노조사무실 액자에 걸어 놓고 노조 규약에서 대단한 목적들을 정해 놓고 있다 할지라도 이게 노조의 실체다. 단순하게 조합원의 권리를 요구로 내걸고 투쟁해서 쟁취하면 된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이 나라 노조들이 자신의 사업장에서 삼성 직원들의 것보다 우월한 조합원들의 권리를 쟁취하면 된다. 삼성이 직원들에게 주는 것보다, 노조가 삼성의 경쟁사업장 사용자를 상대로 조합원에게 더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투쟁해서 쟁취하면 된다. 혹 그건 삼성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 사업장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당신이 주저한다면, 나는 바로 당신의 이 주저함이 이 나라 노조운동이 무노조 삼성을 만든 것이라고 말해 주겠다. 삼성의 조선소와 경쟁하는 민주노총의 조선소 사업장에서, 삼성의 건설과 경쟁하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건설 사업장에서, 삼성의 반도체와 경쟁하는 한국노총의 반도체 사업장에서 삼성 직원들보다 우월한 조합원의 권리를 요구하지 못해 왔던 이 나라 노조의 소심함이 이 세상에서 무노조 삼성의 신화를 이어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복수노조 시대가 왔다고 요란을 떨어도 이 주저함과 소심함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개정 노조법이 이 나라 노조운동에게 노조설립의 자유와 단결의 자유를 보장해 줬음에도, 이 나라 노조운동은 아무런 법적 제한이 없음에도 삼성에서 노조를 조직할 실력이 없다고 평가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복수노조 설립금지법을 핑계로 내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개정 노조법 시행으로 더 이상 법을 핑계 삼을 수 없게 됐다. 이제 드러날 것이다. 이 나라 노조운동의 실체가 그대로 모두 보여질 것이다. 그것은 삼성의 무노조를 깨뜨리고 삼성의 노조를 세우는 것으로 노조운동의 실력이 드러날 것이고, 만약 삼성에 노조를 세우지 못한다면 무노조 삼성의 실체뿐만 아니라 이 나라 노조운동의 실체까지 고스란히 보여질 것이다. 그리고 조합원들, 사람들은 이 나라 노조운동에 묻게 될 것이다. 조합원의,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무엇을 쟁취했냐고. 그때 당신은 더 이상 악법이 문제라고 말할 수 없다. 그때 삼성자본의 탄압이 문제라고 말하겠지만 그건 당신과 당신의 노조가 문제라고 말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복수노조 시대의 삼성은 이 나라 노조운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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