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1만6천519명, 계약직 763명. 포스코가 1분기 보고서를 통해 공시한 직원 현황이다. 그러나 포스코의 포항과 광양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들 외에도 최소 2만여명이 더 있다. 사내협력업체 직원, 이른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평균 근속연수가 15년을 웃돈다. 포스코에는 고용돼 있지 않지만 포스코에 소속돼 있다고 알고 있는 ‘투명인간’들이다.

지난 5월31일 광양제철소에 일하는 16명의 투명인간들이 광주지법 순천지원에 집단소송을 냈다. “나도 포스코의 근로자”라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모두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고용의무가 발생하는 2년 이상 고용된 노동자들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최근 소송을 이끌고 있는 양동운(51·사진)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지회장을 만났다.

양 지회장은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최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 정규직화 판결을 얻어 낸 것이 그의 자신감에 힘을 보탰다. 판결의 핵심은 업무의 연속성과 원청의 업무지휘 여부였는데, 그는 "포스코도 현대차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아니, 그는 “포스코는 현대차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양 지회장은 포스코 하청회사에서 20여년간 일했다. 원청의 지휘감독이나 작업공정을 그만큼 꿰고 있는 이도 드물다.

“포스코는 외환위기 이후에 채용을 하지 않았어요. 원청 정규직은 줄고, 하청이 늘었습니다. 공장은 자꾸 증설하는데 원청 노동자가 줄었다는 것은 원청이 맡고 있는 일을 하청이 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그도 예전에 원청이 했던 일을 하고 있다. 원청과 하청의 일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양 지회장은 “정규직은 운전실에서 무전기로 지시하고, 하청은 지시에 따라 일을 한다”며 “포스코에서는 대리인인 하청 소속의 작업반장을 통해 지시한다는데, 실상은 직접 지시를 하지 않으면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연속공정은 완성차업계나 철강업계나 비슷하다.

그는 “자동차에서 섀시를 만든 뒤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듯이 제강에서 압연으로, 다시 냉연으로 이어지는 등 모든 공정이 연결돼 있다”며 “원청은 쉽고 깨끗한 일을 하고, 하청은 직접소음에 노출된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것만 다르다”고 강조했다. 지휘감독의 증거라 할 만한 공정별 작업표준서를 비롯해 원청 정규직의 무전내용 같은 증거자료도 이미 갖춰 놓았다고 했다.

양 지회장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오롯이 청춘을 쏟았다. 50줄에 들어선 그의 정년도 4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포스코 협력업체의 정년은 55세다. 포스코 노동자들의 고령화는 정규직·비정규직·사내하청을 가리지 않는다. 사내협력업체 직원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가 정규직처럼 정년을 3년 늘려 달라는 것이다. 양 지회장은 “베이비붐세대가 정년퇴직하면 하청회사들도 40~50%가 퇴직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의 처우는 극과 극이다. 임금은 정규직의 50%를 밑돈다. 그는 “23년차 하청노동자가 연장근로까지 하면서 117만원을 받는다”며 임금명세서를 보여 주기도 했다. 근무체계도 다르다. 정규직은 4조2교대지만 하청 노동자들은 3조3교대로 일한다. 그만큼 밤새 일하는 날이 많고, 쉬는 날이 적다. 현대차를 비롯한 다른 대기업 사내하청보다 처우가 열악하다.

“포스코가 윤리기업이라고요? 사실 이번 소송을 하면서 이런저런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증거도 많이 확보했고요. 그래도 이길 확률은 절반을 넘지 못합니다. 어디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합디까. 소송에 지면 저나 함께한 동료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겁니다. 그래도 포스코에 이렇게 차별받는 하청 노동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매년 7월 하청업체와 계약하면서 핵심 성과지표(KPI) 제도를 적용하는데, 노사관계에 따라 등급을 정하고 하위등급은 용역비용을 깎습니다. 포스코가 이런 회사예요. 소송이라도 하지 않으면 누가 실상을 알겠습니까. 지더라도 끝까지 갈 겁니다.”

양 지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지나가는 말로 “이제 출근해야 한다”고 했다. 밤 근무란다. 지회 사무실에는 창간 17돌을 맞아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특별인터뷰가 실린 포스코신문이 놓여 있었다. 포스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포스코가 4조2교대를 시작한 이유는 우선 삶의 질을 높이고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가족을 소홀히 하면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가족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또한 4일 동안 쉬면서 자녀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 세대 간 차이를 줄이고, 반드시 자녀에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합니다. 포스코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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