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보험설계사(내근 보험모집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돼 산재보험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이 법률구조의 일환으로 진행한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보험설계사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나온 판결이어서 눈길을 끈다.

보험설계사 보험사와 독립사업자로 위촉계약 체결

정아무개(26)씨는 지난 2009년 1월 M생명보험사에 TFC(내근 보험모집인)로 입사했다. 내근보험모집인은 보험회사 내에서 전화 등을 이용해 보험계약의 체결 및 중개, 보험계약의 유지·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3주간 기본교육을 마친 정씨는 보험설계사 등록을 하고 같은해 2월 M사와 정식으로 ‘TFC 위촉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는 ‘TFC는 독립사업자로서 근로기준법 및 기타 관련법상 근로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며, 회사직원에게 적용되는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정씨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온종일 전화를 이용해 고객들에게 보험상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잦은 기침과 음성변성에 시달렸다. 결국 검진결과 급성후두염, 성대 및 후두용종 등의 진단을 받았다. 정씨는 "근무 중 생긴 질병"이라며 보험사에 치료비를 요구했다. 하지만 M사는 정씨가 작성한 ‘TFC 위촉계약서’를 근거로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치료비를 지원할 수 없다고 맞섰다. 이어 정씨가 계약서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항의하자 M사는 정씨를 해고했다.

경제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정씨는 고민 끝에 법률구조공단 대전지부를 찾아 도움을 청했다. 사연을 들은 공단은 대전지방법원에 치료비와 부당해고로 인한 임금 등 2천여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TFC의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공단의 청구를 기각했다. 공단은 항소를 제기했고, 결국 1심과 다른 판결을 이끌어 냈다.

법원, 업무수행상 보험사 관리·감독 받아 ‘근로자’

항소심 재판부인 대전지법 민사2부(재판장 심준보)는 정씨를 근로자로 봐야 한다며 보험사가 치료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업무의 내용과 업무처리방식이 보험사가 정한 보험영업지침에 의해 사전에 결정되고, 근무시간이 보험사에 의해 관리되고, 업무수행 과정에서 보험사가 상당한 감독을 하고,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보험사가 제공했다”며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또 "정씨가 보험사에 취업한 후 매일 전화상담을 해 성대에 무리가 가해져 급성후두염 등이 발병하였다고 봄이 상당해 질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도 인정된다”며 “보험사는 사용자로서 정씨에게 치료비 및 약제비를 지급하라"고 덧붙였다. 보험사는 상고를 포기했고, 이 판결은 지난 4월 확정됐다.

법원은 그러나 부당한 계약체결 및 부당해고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원고가 계약내용을 인지하지 못하였거나 부당해고를 당하였다는 사정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원고가 금전적인 문제와 건강상의 이유로 인하여 위촉계약 해지를 요청한다는 내용의 위촉계약해지 요청서를 원고 스스로 작성·제출해 이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거나 부당해고를 당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관련 판례]

대전지방법원 2009가소127353
대전지방법원 2010나1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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