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군사정권이 지난 63년 복수노조를 금지한 지 반세기 만인 이달 1일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에 복수노조가 허용됐다. 노동계는 단결권 보장 차원에서 복수노조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우려가 적지 않다.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위헌소송이 제기됐고, 제도 자체가 복잡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매일노동뉴스>가 8회에 걸쳐 복수노조 제도의 모든 것을 해부한다.

[게재순서] 1. 복수노조 시대, 약일까 독일까 2. 기득권 인정하고 소수노조 권리 제한 3. 과반수 확보경쟁 불붙어 4. 정규직·비정규직, 사무직·영업직 분화 5. 부실한 법적기준, 부실한 노사관계로 6. 파업 어려워지고, 부당노동행위 쉬워지고 7. '헤쳐 모여', 양대 노총 구도 재편되나 8. 노조법 개정 논란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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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부터 시행된 노동법은 조금씩 성숙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산별노조를 추진하면서 노동자 양극화 해소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입니다."(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단순히 사용자가 교섭비용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단체교섭권 못 주겠다’, ‘단체행동 하지 마라’, 이렇게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의 정신입니다. 그 헌법의 정신을 이번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완전히 위배하고 있습니다.(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지난해 1월1일 새벽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된 뒤 야당의원들은 절규하듯 반대토론을 했다. 이어 야당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된 표결에서 국회의원 175명 중 173명이 노조법 개정안에 찬성했다.
그리고 노조법 통과 뒤 1년6개월이 지난 이달 1일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에 복수노조가 허용됐다. 제도 시행 첫날부터 파장은 컸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만 71개의 새로운 노조가 생겼다. 무노조 사업장 5곳에는 신규노조가 설립됐다. 바야흐로 '노조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것이다.

◇조직률 10.1%, 상승할까=복수노조는 필연적으로 조직경쟁을 부른다. 이는 노조 조직률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과거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53년 처음 만들어진 노동조합법은 복수노조를 허용했다. 노조법의 효시라 할 이 노동조합법이 공포되면서 기존 조직이 재편되고 신규노조가 급증했다.

53년 194개 노조(조합원수 11만2천여명)에서 54년 342개 노조(15만2천명), 58년에는 634개 노조(24만8천명)로 급증했다. 노조와 조합원수 증가는 조직분화보다는 새로 설립된 노조가 이끌었다는 게 노동운동사 연구자들의 일치된 해석이다.
 
올해도 그때와 비슷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노동계는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방침을 세우고, 세부 실천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당장 삼성이나 포스코 같은 무노조 기업들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간 무노조 대기업들은 복수노조 설립금지 조항을 활용했다. 사실상 활동이 없는 페이퍼 노조를 미리 설립해 노조설립을 사전에 봉쇄하는 방식이다. 포스코의 경우 1만6천여명의 직원 중 노조에 가입된 인원이 20명 안팎에 불과하다. 임금교섭도 노조가 아니라 사원협의회가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신규노조 설립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새로운 노조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조직대상에서 제외했던 비정규직을 끌어안을 개연성도 높다.



◇험난한 노조설립=높은 기대가 환상에 그칠 수도 있다. 현실이 그만큼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한 무노조 기업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조설립을 추진하다 최근 유보 결정을 내렸다. 이 회사의 경우 지난 10년간 사내협력업체를 분할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이 세력화할 기회를 줄였다. 복수노조 허용을 앞두고는 사내협력업체 인사담당자까지 포함하는 교육을 수차례 진행하기도 했다.

노사관계의 상대편인 회사의 움직임을 고려하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복수노조가 허용된다고 노조를 바로 만들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그렇게 노조를 만들었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으니 당분간 탐색전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최근 5년간 조합원이 급성장한 건설업체 노조의 한 간부도 “조직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의 초동 주체가 필요하다”며 “1만명이 넘는 회사에서 직원 몇 명이 노조를 만든다고 나섰다가 발각되면 해체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한 대규모 제조업체의 노무 관리자는 "현재 있는 노조에서 취할 수 있는 기대이익과 비교해 새 노조가 가질 수 있는 이익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복수노조 가능성을 낮게 봤다.

◇칼자루 대신 칼날 잡은 노조=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기는 어렵지만 사용자들이 복수노조를 활용할 여지는 많아졌다. 삼성전자가 국제노동기구(ILO)에 '노조가 아닌 임의단체'에 단결권과 교섭권을 주는 방안을 문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본지 6월3일자 2면 참조>

상조회 같은 조직을 노조로 공식화하는 방법도 예상된다. 이른바 '사용자(회사) 노조'(company union)가 우후죽순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전부터 택시·버스 등 운수업계에서 비슷한 사례가 확인된 바 있다. 전국택시노련 소속 사업장인 우일운수나 창운운수가 그렇다. 회사측이 말을 듣지 않는 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탈퇴를 종용하고, 탈퇴한 조합원들을 별도의 상조회로 끌어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노조의 힘을 빼고 동시에 사용자 입맛에 맞는 노조를 신설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실제 지난 1일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노조 76곳 중 버스·택시가 44곳에 달했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

◇돌고 돌아 미군정 시대로 간 노조법=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도입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노조의 힘을 더 뺄 것으로 보인다. 창구단일화 제도는 이미 위헌논란에 휘말려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27일 "창구단일화는 소수노조의 노동3권을 무력화하고,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는 제도"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사실 교섭창구 단일화는 한국경총의 숙원이었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2009년 계간지인 ‘시대정신’에 기고한 글에서 노조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와 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해 “경총의 중대한 전략적 판단”이라고 밝혔다. 김 부회장은 당시 기고에서 “복수노조 허용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못하면 사용자에게 교섭의무가 없다는 것을 명시해 경영계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고도의 정치적인 사안이다. 과반수 노조에게 교섭권을 주는 배타적 교섭제도는 46년 미군정 기에 입안된 법령 97호에 규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독립 이후 노조를 대부분 장악하고 있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를 약화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본다. 실제로 이후 전평은 몰락해 갔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가 펴낸 ‘한국노동운동사’는 법령 97호를 이렇게 풀이했다.

“당시 대표적인 노조 국제조직이었던 세계노련은 물론 국내의 대표적 노동조합인 전평 등 모두가 조합측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해 산업별, 또는 직능별의 횡단적 단체교섭을 강력하게 요구했는데도 노사 간의 모든 교섭을 기업단위 교섭으로 한정시켰다는 것은 새로운 노동정책이 노동기본권을 보장해 조합측 교섭력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전개되는 노동관계를 군정당국이 선호하는 유형으로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방안이었다는 것을 시사하게 된다. 노동부 지침에는 동일사업장 내에 두 개 이상의 노동조합을 상정하는 배타적 교섭대표제도가 규정돼 있으나 사업장에는 전평 산하조직만이 유일한 조직이며 일부 사업장에 한해 예외적으로 제2 노동조합 형태로 대한노총 조직이 결성돼 있던 것이 당시 노동계의 실상이었기 때문이다.”
2011년 7월1일 허용된 노조법상 복수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노동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기존노조가 조합원 탈퇴 거부하면?
Q. 새로 생긴 노조에 가입하려고 하는데요. 기존노조가 탈퇴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나요.


A. 탈퇴서를 제출했는데도 기존노조가 탈퇴를 승인하지 않고 계속 조합비를 공제하는 등 사실상 조합 탈퇴의 자유를 방해할 경우 보다 명확하게 노조탈퇴 의사를 표시하면 됩니다. 예컨대 내용증명 우편으로 탈퇴서를 송부하고, 규약에 정한 기일 또는 상당한 기간을 정해 탈퇴 승인을 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같은 절차에도 기존노조가 탈퇴를 승인하지 않으면 탈퇴서가 기존노조에 도달한 시점부터 유효하게 탈퇴가 성립된 것으로 보면 됩니다. 그럼에도 회사가 조합비를 공제한다면 탈퇴서가 노조에 도달한 시점 이후 노조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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