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재벌개혁’ 구호가 정치권에서 공공연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재벌개혁이 당연시되던 외환위기 직후도 아니고 재벌개혁을 사회개혁의 주요 부분으로 내걸며 집권했던 참여정부 시절 얘기가 아니다. ‘대기업 친화적 정책’을 핵심 공약으로 했던 이명박 정부 집권 4년차에 나온 것이다. 그것도 야당이 아니라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진원지라는 점에서 놀랍다.

정두언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지난 6월26일 ‘대기업은 다시 재벌이 되어 버렸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재벌개혁 없는 선진화는 불가능하다”며 “재벌개혁은 한나라당이 ‘부자 정당’ 오명을 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적지 않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에 동조하면서 7월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의 주요 이슈로 부각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조차 하다. 격세지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09년 하반기 이래로 50% 전후라는 놀라운 이상(?) 지지율을 유지해 왔던 이명박 대통령이 2011년 접어들면서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더니 급기야 4·27 재보선 참패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6월 접어들어서는 이 대통령 지지율이 30% 밑으로 추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총선과 대선을 불과 1년 앞둔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한나라당 식 복지정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고 반값 등록금이나 보육지원 확대 등을 하려면 재원마련이 필수적이었는데, 이를 위해 추가적으로 인하하려던 대기업 법인세 인하 등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면이었다. 또한 경제위기 와중에도 대기업은 고속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국민의 체감경기는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터였다. 이런 마당에 재벌 대기업이 조용히 있어 주는 것은 고사하고 경제단체들이 들고 일어서 공공연하게 법인세 인하 철회를 비판하는가 하면, 자신들과 직접 이해관계도 없는 반값 등록금 정책까지 문제 삼고 나서 버렸으니 한나라당으로서는 좌시할 수 없었을 터였다.

“재벌이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행사한다”, “북한의 세습체제를 능가하는 세습 지배구조, 문어발식 족벌 경영 등으로 서민경제를 파탄내며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 이유다.

우선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한나라당 일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명박 정부 집권기간 3년, 동시에 경제위기 3년 기간 동안 확연해진 사실은 우리사회에서 재벌 대기업의 눈부신 성장이 곧 국민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 대기업이 선도하는 경제 발전모델은 지금 시점에서 확실히 그 효력을 상실했다.

이렇게 재벌 대기업의 성장이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이 아니라 불균형을 확대하고, 이들이 국민경제의 부가가치를 독점적으로 편취하는 현실에서 양극화 해소나 복지확대는 매우 어렵게 된 것이며, 지금 시점에서 ‘재벌개혁’이 국민경제와 사회통합을 위해 필수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과제가 됐다. 향후 우리 사회의 핵심의제로 재벌개혁이 다시 전면에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는 내년 총선과 대선국면으로 접어들수록 확대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한나라당이 야당인 민주당보다도 앞서 재벌개혁이라는 의제를 공식적으로 꺼내든 것도 모자라 재벌들에게 가장 민감한 세습이라는 용어를 동원하면서 원색적인 비난까지 마다하지 않을 정도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대책이라는 것은 말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주장만 놓고 보면 한나라당은 재벌 대기업들에게 법인세 추가 인하 중지나 ‘임시투자세액 공제제도’ 종료를 순순히 수용해 주기를 바라는 정도다. 최근 대기업이 동네 순대가게 영업시장까지 먹으려한다는 비난에서 보듯이 중소기업이나 영세상인들의 시장까지 과도하게 잠식하는 행태를 자제하는 정도를 원하는 것이다. 덧붙인다면 정부가 물가 문제로 고전하는 있는데 통신사나 정유사 등 재벌 대기업들이 물가안정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줬으면 하는 것이다. 이게 전부이고 한나라당 식 재벌개혁이다.

한 가지 확실히 해 둬야 할 것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살아남은 주요 재벌 대기업들의 경제력 집중도는 꾸준히 상승해 왔지만,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규제완화와 감세, 고환율 정책으로 인해 그 정도가 역사상 최고점까지 올 정도로 심해졌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10여년 만에 다시금 재벌개혁의 깃발을 들 정도로 집중도는 심화됐고 반면 국민경제 파급력은 약화됐던 것이다. 바로 한나라당이 저질러 놓은 일이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고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에서 “현재 수준에서 더는 과도하게 재벌이 나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수준의 재벌개혁이라면 이는 문제를 일으킨 자신의 책임조차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이 정도 수준의 재벌에 대한 요구조차도 대놓고 거부하면서 정부·여당과 날을 세우고 있는 재벌 대기업 집단이다. 가히 2010년대 한국의 재벌 대기업 집단은 ‘누구의 눈치도 통제도 받지 않는 절대권력’으로 부상했다는 점에서 이전 시기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전횡을 일삼고 이익을 독점하는 것은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나 정의의 관점에서 보나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한나라당의 어설픈 재벌개혁 깃발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