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 산재노동자의 가족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J씨는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사내하청(협력)업체에서 14년간 일하다 지난해 ‘급성림프아구성백혈병’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 한 여성노동자(이하 재해자)의 딸이자, 이제 갓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다.
재해자는 현재 삶과 죽음을 오가고 있다. 가족들은 골수이식자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서울의 한 병원에서 제대혈 이식을 받았으나, 현재 무균실에 입원 중으로 면회조차 어렵다. 재해자는 한국타이어 가류공정 및 수리작업장에서 반제품 타이어 운반과 불량타이어 수리보조 일을 했는데, 우리는 재해자가 근무 중 ‘한솔’이라 불리는 벤젠 함유 유기용제를 취급하던 중 백혈병이 발병한 것으로 봤고, 근로복지공단 대전지역본부에 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초기에 이 사건은 한국타이어 정규직과 동일한 작업환경에서 근무했음에도 재해자가 비정규직(사내협력업체)이라는 이유로 아주 조용히 묻힐 뻔했다. 그래서 재해자의 딸인 J씨를 설득했다. “79년 준공된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만 나타나던 백혈병 피해자가 96년 준공된 금산공장에서도 긴 잠복기를 거쳐 발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어머님이 산재인정을 받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가족이 적극 협조해 달라”고 매달렸다. 그 뒤 온 가족이 산업재해를 당한 어머니의 회복과 산재인정을 위해 똘똘 뭉쳤다. 가족들은 충격 속에서도 서로 위하고 배려했다.

J씨는 어머니를 대신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실시한 금산공장 2차 역학조사에 참여했다(대리인인 필자는 금산공장 출입을 허가 받지 못했다). J씨는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고무 타는 냄새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엄마가 아프시니까 많은 얘기 못했는데, 엄마 월급명세서 보고 놀랐어요. 3교대로 밤에도 일하는데 적으면 110만원, 많으면 140만원 받으셨더라고요. 저는 그 정도인 줄 몰랐어요. 엄마가 그런 환경에서 일하는지 몰랐어요.”

J씨는 투병 중인 어머니를 대신해 필자와 함께 한국타이어 전·현직 노동자들을 만나 '한솔'을 취급한 사실에 대해 증언을 듣고 이를 기록했다.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열리던 날, 필자는 사안의 중대성과 한국타이어 직업병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재해자의 가족 중 배우자인 남편과 함께 회의 참가를 신청했다. 허락된 시간에 맞춰 의견진술을 마치고 회의실을 나왔다.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재해자의 남편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고, 공단 직원에게 “아직 못한 말이 많다. 다시 들어가서 더 얘기하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공단 직원은 "이미 심의가 끝났으니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망연자실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J씨는 두 가지 바람을 이야기했다. 바로 “한국타이어측이 유해물질을 사용했다고 인정하는 것”과 “어머니의 백혈병이 업무상질병 판정을 받는 것”. 그중 한 가지는 이뤄졌다. 다행히도 근로복지공단이 재해자의 백혈병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 중 또 한 가지, 과연 한국타이어는 반성하고 있는가. 오히려 산재를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돌연사와 각종 업무상 사망사고, 뇌심혈관질환 집단발병 등으로 노동자가 끊임없이 죽어 가는 한국타이어의 현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너무나 처참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이어 이제는 백혈병 등 조혈기암 집단발병까지 직업병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해 안전하고 인간적인 노동조건을 제공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막론하고 현 재직자는 물론 퇴직자들의 건강을 추적해 관리하는 등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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