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생사의 위기에 처한 도마뱀은 눈물을 머금고 제 살을 자른다. 기업의 입장에서 정리해고는 이런 것이다.”
필자가 참석했던 심문회의에서 모 위원이 했던 말이다.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천만번 옳은 이야기라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노동자는 노동을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의 삶이 노동자의 노동에 달려있다. 이런 노동자가 모여 이 나라를 이루고 경제를 돌리며, 절대다수의 국민이 된다. 이런 노동자, 그의 가족, 국민의 삶이라는 것이 급할 때 잘려나가 말라 비틀어져도 상관이 없는 죽은 살로 취급받아도 되는 그런 하찮은 것일까. 잘린 꼬리는 언제든 기업에 인력이 필요할 때 다른 노동자로 대체하면 그만인 일일까.

이런 식으로 자본주의 경제질서에서 위기에 대한 책임은 언제나 노동자에게 전가돼 왔다. 그런데, 이젠 위기가 오기 전에 예방적으로 제 살을 잘라야 한다며 노동자를 해고한다. 그것도 정부가 앞장서서. 그것이 2008년부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 선진화의 실체다.

2. 공공기관 선진화에 따른 00공사의 직권면직

정부는 공공기관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미명하에 2008년부터 공공기관 선진화를 추진해왔고, 그 내용은 108개 공공기관에 대한 통·폐합과 각 공기업들에 대한 기능·조직·인력의 효율화를 제고한다는 목적의 직원감축 및 예산 절감 등의 대책을 각 기관이 강구하라는 것이었다.

00공사는 정부의 위 계획에 따라 주무부처 및 기획재정부의 협의를 거쳐 305명에 대한 인력을 조정하기로 하고 자체 정원을 줄이고, 해고대상 직렬 중 희망자를 전직시키며 명예퇴직과 희망퇴직 등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 소방직렬 12명과 정비직렬 3명이 남게 됐다. 그러자 00공사는 근무성적·피부양자 수 등을 반영해 위 15명이 종합점수 하위자 15명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직권면직을 실시했다.

그러나 00공사는 최근 5년간의 매년 매출액이 3천억원에서 4천억원가량을 유지하고 있었고, 당기순이익 또한 370억에서 756억에 이르는 정도의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직권면직된 15명은 부당하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6월10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부당한 정리해고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1심 판결을 선고했다.

3. 법원의 판단
 
우선 위 직권면직에 대해 “원고들의 의사에 반해 고용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시키는 것으로서 그 실질은 근로기준법상의 해고에 해당한다”면서 “피고의 경영효율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결국 성질상 정리해고에 해당한다”고 봤다.

정리해고에 대한 요건은 근로기준법 제24조 제1항 내지 제3항이 규정하고 있다. 사용자가 경영상의 이유에 의해 근로자를 해고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하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그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고,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의 기준 등을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대표에게 해고실시 50일전까지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00공사의 위 직권면직이 이러한 기준을 충족한 정당한 정리해고인지 법원의 판단을 살펴본다.

00공사는 “정부가 그 주식 100%를 소유한 공기업으로서 각종 경영지침 이행에 대한 관리·감독을 받고 있어 정부의 경영지침에 사실상 구속될 수밖에 없고, 고속철도의 개통과 고속도로망의 확충 등 다른 교통수단과의 경쟁 확대, 국내선 항공수요의 감소 등으로 인한 지방공항의 통합 또는 매각, 일부 기능의 민간 위탁 등으로 공항운영의 효율화를 도모해야 할 급박한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원은 00공사의 2009년까지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이 증가추세에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향후 경영상의 어려움이 예상된다거나 소방기능 등의 외부위탁으로 인해 상당한 경비절감효과가 있다는 등의 사정은 일부 기능을 외주화해 경영의 효율성을 제고할 필요성이 있음을 인정할 사정일 뿐 2009년도에 바로 정리해고를 통해 인원을 감축해야 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음을 인정할 만한 사정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00공사는 경영효율화를 위해 신규사원의 채용중지·이사 대우 직급폐지, 청주공항 민영화 추진·연봉제 확대·중복인력 해소·임금삭감 등의 조치를 취해 왔고 이 사건 직권면직은 전직과 명예퇴직·희망퇴직을 실시한 이후에도 남아 있는 소수의 인원에 국한해 이루어진 것이며, 원고들이 퇴직하더라도 주주회사를 설립해 00공사로부터 용역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등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00공사의 일반직 직원 중 2010년과 2011년 정년퇴직 예정자가 43명이고, 해고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간 내에 원고들의 직렬 내지 원고들이 전직할 수 있는 행정직렬에서 15명의 결원이 발생한 점을 들면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정년퇴직으로 인한 자연감소·추가적인 전직·명예퇴직·희망퇴직의 실시 등으로 충분히 정리해고 없이도 나머지 15명의 인원을 감축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이 사건 정리해고를 단행했으므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거나 해고 회피를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아가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인력감축은 자연감소·희망퇴직 등을 활용해 3~4년 동안 단계적으로 추진하라는 것이고, 국토해양부의 지침 또한 그러하므로 00공사는 2012년까지 다른 방법을 통해 인력감축을 시도하되, 이 시기까지도 감축이 되지 않은 인원에 대해는 그 때에 비로소 정리해고를 하는 방법을 고려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되는데도 2009년에 바로 정리해고를 실시했으므로 이 점에서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나 해고 회피를 위한 노력을 다했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결국 법원은 00공사의 근로자들에 대한 직권면직 사건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없고, 충분한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머지 요건들을 볼 필요도 없이 부당한 해고로 봤다.

4. 리뷰

대상판결은 하급심이긴 하나 법리적으로 정리해고의 요건 관련 세부 쟁점에 관한 몇가지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예방적 정리해고의 한계이다. 정리해고를 하기 위한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 함은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해 인원삭감이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되는 것”이라는 대법원의 견해(대법원 2002. 7. 9. 선고 2001다29452 판결) 이후 일부 사업장에서는 장래에 올 위기에 대처한다며 무분별한 인원삭감, 즉 예방적 정리해고가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예방적 정리해고라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즉 ‘객관성’을 가지는 경우에만 유효할 수 있다는 것을 본 사안이 보여준다. 00공사가 주장한 “고속철도의 개통과 고속도로망의 확충 등 다른 교통수단과의 경쟁 확대, 국내선 항공수요의 감소 등으로 인한 지방공항의 통합 또는 매각, 일부 기능의 민간 위탁 등으로 공항운영의 효율화를 도모해야 할 급박한 필요성”은 00공사의 매출액 내지 당기순이익에 비추어 볼 때 인원삭감의 객관적 합리성을 결하였다고 본 법원의 태도는 예방적 차원의 정리해고에 대한 한계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로, 충분한 해고회피 노력의 의미이다. 대상판결에서 00공사는 일반적인 해고회피 방안으로 소개되는 신규채용 중지·임금삭감·전직과 명예퇴직·희망퇴직 등을 추진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00공사의 예상되는 인력 자연감소 인원 내지 해고 이후 발생한 실 결원을 보면서 충분히 정리해고 없이도 나머지 15명의 인원을 감축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희망퇴직 등 다른 일반적인 노력을 판단에서 배제하고,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을 수 있는 사정이 있음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은 부분을 들어 ‘충분한’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이상과 같이 본 사건은 법리적인 측면에서 우리에게 예방적 정리해고의 한계, 해고회피 노력의 의미에 대한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

그러나 본 사건의 진정한 본질은 정부 주도하의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정리해고라는 것이다. 정부가 경영효율화라는 미명하에 사람을 해고할 정도의 긴박한 상황이 아닌 공공기관에도 명시적·묵시적으로 인적조정을 명한 사건인 것이다. 결국 본 대상판결은 00공사의 사건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없고,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로 보는 법률적 판결을 했고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도 중요한 것이므로 함부로 쓰다 버리지 말라”는 정치적 심판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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