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은행(메가뱅크) 설립을 저지하는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됐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5일 전체회의를 열어 민주당 조영택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상정시켰다. 법안에 따르면 금융지주사가 다른 금융지주사를 인수할 때 95%의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에는 이 조항이 규정돼 있는데 상위법에 이를 명시한 것이다.

당초 금융위원회는 지분매입 한도를 ‘50% 수준’으로 낮추는 시행령 개정작업을 벌여왔다. 금융위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우리금융지주와 다른 금융지주사와의 합병조건을 완화하려 했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부의 개정작업은 수포로 돌아간다. 만약 금융위원회가 시행령 개정작업을 강행할 경우 여야는 조 의원의 법안을 통과시켜 이를 막을 계획이다.

메가뱅크는 이미 실패한 구상이다. 전날(15일) 국회에 출석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우리금융지주 매각입찰에서 산은금융지주를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금융지주 인수를 통해 메가뱅크 설립을 제안한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도 “정부가 반대한다면 이를 따르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김석동 위원장은 지분매입 비율을 50%로 낮추는 금융지주사법 시행령 개정은 그대로 추진하겠다고 못 박았다. 역시나 금융 관료들은 메가뱅크 구상을 포기하지 않은 셈이다.

강만수 회장의 메가뱅크 구상이 힘을 얻지 못한 건 너무나 당연하다. 은행들은 이미 외환위기를 거쳐 오면서 충분히 몸집을 불렸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예금은행의 자산규모는 1천722조4천억원으로 2000년 말에 비해 2.3배 성장했다. 자산규모로 볼 때 은행은 생명보험보다 4배 이상 높고, 증권·손해보험·저축은행은 비교도 안 된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세계은행 순위는 69와 71위를 차지했고, 200위권 안에 국내 6개 은행이 포진해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은행의 절대적인 수치나 상대적인 규모로 평가해 볼 때 충분히 규모가 크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덩치에 맞는 국제경쟁력 확보일 것이다. 국내 은행은 그간 질적인 발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은행 간 짝짓기를 통해 점포와 인력만 줄였을 뿐 합병효과를 극대화시키지 못했다. 때문에 국내 은행의 국제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이다. 세계적인 평가기관에 따르면 한국의 금융산업의 국제경쟁력의 경우 2002년에 비교해 2010년의 순위는 크게 변동이 없다.

되레 은행이 대형화되면서 독과점이 심화됐고, 소비자금융이나 자산운용부문의 경우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대마불사의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은행을 포함해 우리금융지주사 전체(약 290조원)의 상대적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4.8%를 차지한다. 경제위기가 닥치면 위험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메가뱅크는 금융산업에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불러올 게 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은행의 규모를 제한하고 감독을 강화한 것은 이를 의식한 것이었다. 대마불사를 믿고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한 메가뱅크의 금융관행에 일대 수술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금융당국과 관료들만 이런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음에도 금융관료들은 메가뱅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현재로선 우리금융지주 매각전에 참여할 수 있는 유력한 곳은 KB국민지주다. 소매은행을 거느리고 있는 우리금융지주과 KB국민지주가 합병되면 대규모 점포 축소와 인력감원은 불가피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여야가 메가뱅크 설립 저지에 힘을 모은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금융관료들의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메가뱅크 실험에 급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강만수 회장과 금융당국의 애초 구상이 실패했다면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는 것이 맞다. 훨씬 규모가 작은 저축은행 조차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고 비리에 연루된 금융당국에게 메가뱅크에 대한 관리감독을 어떻게 맡기겠는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현재로선 국내은행은 덩치를 키우는 것보다 질적 발전을 모색할 때다. 해외 네트워크를 형성한 ‘작지만 강한은행’이 더욱 절실한 때다. 국제경쟁력은 규모가 커졌다고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덩치만 크고 국제경쟁력은 없는 중국의 거대은행을 보면 이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는 메가뱅크 설립을 염두에 둬선 안 될 것이다. 우리금융지주의 지분을 일괄매각하는 것이 어렵고, 후유증이 심각하다면 매각 방식의 변경도 고려해야 한다. 이를테면 경쟁입찰에 의한 분산매각을 하는 방식도 적극 검토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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